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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제리는 여기저기 널브러진 잭의 털을 쫓으며 그의 자취를 뒤쫓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점점 털에서 나는 냄새와 비슷한 불쾌한 냄새가 났다. 톰과 제리는 어느덧 네온사인이 가득했던 도시에서 가로등 빛도 잘 안 들어오는 음습한 골목길로 오게 됐다. 주변은 매우 어두웠고 기분 나쁜 까마귀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분위기를 보니 어딘가에 잭의 무리가 있을 법했다. 길거리 생활 경험이 있었던 둘이지만 이런 분위기에는 익숙지 않았다. 더군다나 오랜만에 잭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기에, 마음마저 편하지 않았다. 둘은 매우 무서웠지만, 서로에게 의지해 나아가고 있었다. 너무 어두워 잭의 털이 더는 보이지 않는 곳까지 다다랐을 때, 제리가 톰에게 말했다.

갑자기 낯선 고양이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톰, 이 근처에 잭이 있는 거 같아!
이제 떨어져서 찾아보자. 그게 효율적일 것 같아.

고개를 끄덕이던 톰은 조금 전 제리의 비명에 놀랐던 자신이 생각나 제리에게 말했다.

제리, 아까 네 비명에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위험하니까 내 옆에서 멀리는 떨어지지 마!
그리고 조심해야 되는 거 잊지 마!

제리의 반응은 시큰둥하였다. 톰은 제리의 반응에 더욱 불안하였다.

제리...

톰이 제리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제리는 잘 모르는 듯했다. 제리는 톰에게 매우 소중한 존재이기에 제리가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을 톰은 가지고 있다. 톰은 신신당부했지만 제리는 썩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듯했다.

응, 그래그래. 너무 걱정하지 마. 나, 천재 쥐 제리라고!
모험에 대비해서 이렇게 소보로 빵도 챙겨왔지!
배고플 땐 말해. 나눠줄게!
그래도 걱정해 준 건 고마워!

제리는 자신만만한 듯, 콧대를 세우며 씩 웃었다. 톰은 제리가 자신의 말을 제대로 들었는지 의심이 되었지만, 일단 잭을 찾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하지만 걱정되는 마음에 잭을 찾아보면서도 제리가 위험하지는 않은지 계속해서 주시하곤 했다. 제리는 그런 톰의 마음을 모르는지, 잔망스럽게 주변을 돌아다니며 잭을 찾아다녔다. 그 후, 그들은 꽤 오랫동안 잭을 찾았지만, 별다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골목 사이, 담장 위, 골목 안 구석구석을 찾던 톰은 어느새 막다른 길에 도달해 있었다.

이쪽이 아닌 건가?
분명히 여기서 냄새가 났다고 제리가 그랬는데...
혹시 제리가 잘못 찾은 건가?

오랜만에 길 밖에서 보내는 밤이라 적응도 안 되는데 어딨는지도 모르는 잭을 찾아야 한다니. 지친 톰은 제리에게 이제 그만하고 가자고 말하기 위해 제리를 보았다. 어느새 제리는 저 멀리 골목 사이에서 나오고 있었다. 톰은 멈춰 서서 제리를 향해 소리쳤다.

너무 멀리 떨어지지 말라니깐... 
제리! 제리? 어떡하지, 내 목소리가 안 들리나?...
저러다 큰일이 생기면 어쩌려고...

톰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늦은 밤 골목길. 어떠한 나쁜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톰은 아까 걱정하지 말라던 제리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불안한데.
어떡하지...

제리가 저렇게 날뛸 때는 항상 안 좋은 일이 벌어졌다. 그게 크던 작던 말이다. 물론 제리를 못 믿는 것은 아니었다. 제리는 항상 영리하게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느낌이 안 좋았다. 톰은 불안해졌다. 제리는 불안한 톰의 마음도 모르는지 빠르게 앞서 나갔다.

둘 사이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톰은 제리에게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발을 움직였다. 그때, 제리가 나온 골목 안에서 검은 그림자가 아른아른 보였다.

헉, 저 그림자는 뭐지?
너무 어두워서 잘 안 보이는데..

짐승의 모습을 한 형체가 숨죽이며 제리의 뒤를 쫓고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왠지 모를 불길함에 톰은 초조해졌다. 톰은 실눈을 뜨고 검은 그림자의 존재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골목이 어두워 그것이 짐승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제리를 향한 톰의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그러던 중 제리를 향해 커다란 검은 그림자가 점점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런.. 이대로면 제리가 잡히겠어...!
더 빨리 달려야 해!

검은 그림자의 존재를 알 수 없었던 톰은 이를 제리에게 알리기 위해 소리쳤다.

제리! 뒤를 봐!

톰이 소리쳐 보았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제리에겐 들리지 않았다. 엉덩이를 뒤뚱뒤뚱하며 걷는 것이, 초조한 톰의 마음도 모른 채 제리는 콧노래나 부르는 모양이었다.

이런...! 제리! 위험해!!!
도망쳐!! 제발!!

톰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제리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분명 톰과 제리의 거리는 톰이 뛰어서 막을 수 없는 거리였다. 검은 그림자는 제리가 알아차릴 수도 없도록 조용하고 빠르게 다가왔다. 제리의 바로 뒤로 검은 그림자가 다가왔다. 검은 그림자의 팔이 제리에게 가까워졌다. 제리는 느낌이 이상해 뒤를 돌아봤다. 그 순간 날카로운 발톱이 제리를 낚아챘다.

찰나의 순간이라 아무리 재빠른 제리라 해도 반응하기가 힘들었다.

제리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검은 그림자에 붙잡혔다.

뭐, 뭐야?! 너 누구야?!
이거 놓지 못해-?!
나 천재 쥐 제리라고!!
나 화나면 많이 무섭다! 이거 당장 놔!!

그림자는 소리 없이 위협적이었다. 재빠른 몸놀림을 가진 제리도 그림자를 상대하긴 역부족이었다. 제리를 잡고 있는 손아귀 힘이 너무나도 세서 저항하다가는 그대로 죽을 것만 같았다. 그림자의 손아귀에서 제리는 작은 쥐에 불과했다. 자신만만하던 제리는 죽음의 공포에 휩싸였다. 슬쩍 그림자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공포감이 대단했다. 톰 역시 새까만 그림자가 주는 위압감에 몸이 굳어버렸다. 길거리에서 살던 시절에도 느끼지 못하던 공포가 온몸을 뒤덮었다. 톰은 온몸을 떨며 제리를 붙잡은 그림자를 향해 미친 듯이 소리쳤다.

제리를 놓아줘!! 제리!! 제리!! 안 돼!!
젠장..! 내가 제리에게서 떨어지는 게 아니었는데!

그림자는 제리가 몸부림치지 못하게 완전히 제압한 뒤 톰의 울부짖음을 무시한 채 다시 골목 안으로 향했다. 정신을 차린 톰은 뒤늦게 제리를 잡아챈 검은 그림자를 뒤쫓았다. 하지만 골목 안은 너무 어두웠으며, 검은 그림자는 어둠에 익숙한 듯 보였다. 그에 비해 오랜 시간 집에서 생활해 온 톰은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 힘들었다. 몇 걸음 달리다 담장에 부딪히고 돌에 걸리기 일쑤였다. 톰은 온 힘을 다해 그림자를 향해 뛰어갔지만, 절망적이게도 톰은 그림자와 점점 멀어지기만 했다. 이내 검은 그림자는 어둠에서 헤매는 톰을 비웃듯 제리와 함께 모습을 감추었다.

아니야.. 이럴 순 없어...! 제리..!!!

제리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이미 늦었다. 제리는 톰의 시선에서 벗어나 버린 지 오래였다. 톰은 절망에 빠졌다.

밤중에 이런 곳에 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가 아까 제리를 더 설득했어야 했던 건데..
제리 옆에서 떨어지지 말았어야 했어.... 
이제 어떡해야 하지?

톰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톰은 절망스러웠지만 다시 정신 차리고 제리를 구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 나섰다.

아니야. 이러고 있을 시간 없어. 이럴수록 제리는 더 위험에 빠질 거야. 지금 제리를 구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단 말이야.   
제리!! 어디 갔어!! 제리!!!!

톰은 제리를 애타게 불러 보았지만 제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제리와 있던 시간이 톰의 머리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내 톰의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올랐다.

제리가 납치당했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와 절망감에 톰은 이성의 끈을 놓을 뻔했다.

하지만 톰은 놀란 마음을 다스리며 제리를 잡아간 정체의 모습을 되새겨보았다. 지금 필요한 건 이성이었다. 분노에 잠식되어 있을 수는 없었다. 납치 고양이를 찾아서 제리를 찾아야만 했다.

톰은 제리를 낚아챈 날카로운 손톱과 검은 그림자 속 흔들리는 꼬리를 기억했다.

발과 발톱이 거칠었어... 길고양이가 분명해..
그러면, 저번에 만났던 덩치가 큰 고양인가? 아니면.. 제리가 잭이라고 예상했던 고양이?
아니면 완전히 다른 고양이..?
어두운 골목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검은색 털을 가진 고양이가 분명해!!

톰의 모습은 마치 탐정 같았다. 톰은 그 찰나의 순간을 떠올리며 제리를 납치해간 고양이를 유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톰은 작은 정보만으로 그 고양이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가로등 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골목이었기 때문에 명확히 그 범인의 특징을 잡아낼 수 없어서였다.

혹시.. 제리의 말대로 잭인 걸까??
날이 밝았더라면 떨어진 털이라도 찾아봤을 텐데..
아냐!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

톰은 제리를 찾으러 그림자를 쫓았다. 한시가 급했다.

제리! 어디로 간 거야! 내 목소리가 들리면 대답해 줘!

톰은 제리와 처음 만난 순간부터,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날을 떠올렸다. 그렇게 같이 걸었던 골목과 함께한 모험들이 톰의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제리 제발.. 뭐라도 남겨둔 건 없는 거니...

계속 생각해보아도 기분 좋던 추억들만 생각날 뿐. 정작 도움이 될만한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답답함에 혹시나 싶어 톰이 소리쳤다.

제리!! 제리 어디 있어! 들리면 대답해 봐!!!

하지만 어둠 속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톰은 포기한 듯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다.

다 나 때문이야... 그냥 나 혼자 새로운 주인을 찾아 떠날걸.. 
아까 더 강하게 말렸어야 했는데...
괜히 내가 제리를 끌어들여서 이렇게 됐어... 

톰이 착잡한 마음으로 생각했다.

그때 고개를 숙인 톰의 시야에 자그마한 빵조각들이 불규칙한 간격으로 바닥에 줄지어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톰은 빵조각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 순간 아까 제리가 들고 있던 소보로 빵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제리가 가장 좋아했던 소보로빵이었기 때문이다. 줄지어 있는 소보로빵 조각들을 보자 톰은 생각했다.

길거리에 이런 빵조각이 있을 리가 없어...더구나 이렇게 늦은 시간에 말이야..

그래, 이건 분명히 제리의 신호일 거야!
빵조각들을 따라가 보자.
역시 제리는 똑똑하다니깐!

떨어진 빵조각들을 본 톰은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그렇다. 제리는 잡혀가면서 자신이 먹으려고 남겨둔 빵조각을 조금씩 뜯어 자신의 위치를 알렸던 것이다. 톰은 감정을 추스르고 바로 빵조각들을 추적해 달려나갔다.

한편, 골목 속 어둠 어딘가 길고양이들의 소굴이 있었다. 제리를 납치한 고양이는 이곳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 상황을 모르는 톰은 점점 좁아지는 골목에 발걸음이 점차 느려지고 조심스러워졌다. 빵조각들이 더 골목길 깊은 곳을 향하자 톰은 다시 불안해졌다. 이렇게 깊은 골목길이라면 제리가 이미 위험해졌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제리를 돌려줘! 
제발.. 이렇게 부탁할게...

좁은 골목길에 목적지를 모르는 톰의 두려움 가득한 목소리가 흩날렸다.

톰은 길에서 생활한 시절이 적어 친구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런 톰에게 있어 제리는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이다. 제리가 없어져 버린다면 톰은 의지할 기둥 하나를 잃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제리는 그의 제일 친한 친구였다. 제일 친한 친구인 만큼, 톰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리를 지켜내야만 했다. 이렇게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가장 친한 친구를 잃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아... 안 돼. 여기서 제리를 잃을 순 없어.
어떻게든 찾아야 해.

제리와 같이 있던 톰은 든든했고 무서울 게 없었다. 둘이 함께라면 집이 아닌 어디더라도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자신의 손바닥만 한 제리가 없는 지금, 톰은 모든 게 두려웠다. 제리가 그 고양이들에게 잡아먹힐까 하는 생각에 톰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톰은 그동안 제리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떠오르면서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함께 있을 땐 뭐든 두렵지 않았는데 제리가 사라지니 모든 것이 두려워.
사실 나는 제리가 나와 함께하지 않아도 될 줄 알았어..
나 혼자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전부 다 내 오만함과 어리석음이었던 것 같아..
예전에 길고양이 시절을 생각하면서 자만하면 안 됐어.
어서 빨리 제리를 찾아야겠다.
제리가 없어지면 난 정말 안 돼..!

그렇게 톰은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꾹 참고 더 열심히 제리를 찾아 나섰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마침내 톰은 길고양이들의 소굴을 찾아냈다. 주변에는 쓰레기 더미가 방치되어 악취가 났으며 안쪽에서는 왠지 모를 기분 나쁜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여기 제리가 있는 게 맞겠지...?
너무 무서워...
그래도 제리를 구할 거야! 난 할 수 있어!!

침을 삼키고서 숨을 크게 들이마신 톰은 소굴 안으로 한 발짝 발을 내디뎠다. 안쪽에는 수많은 고양이가 눈에 불을 켜고 앉아 있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듯한 창문 틀, 쓰레기통 그리고 낡은 차 위를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암묵적인 계급이 있는 것 같았다. 그중 가장 높은 창문 틀에서 이 상황을 여유롭게 지켜보는 한 고양이가 있었다. 찰나였지만, 어쩐지 익숙한 실루엣이었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문지기로 보이는 고양이 한 마리가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어이, 형씨... 여기가 어딘지는 아쇼?
길이라도 잃은 거요?
길을 잃어서 들어왔다기엔 걸음걸이를 보니 다분히 의도적인 것 같은데..?

톰이 들어오자 웅성웅성하던 소리는 멈추었다. 그러고는 일제히 방문객 톰을 향해 쳐다볼 뿐이었다. 문지기는 적당한 높임말로 톰을 맞이했으나 그건 명백히 적개심에 찬 기선제압이었다. 문지기만이 아니었다. 톰을 지켜보는 무수한 눈빛에서 톰은 자신을 향한 텃세를 느낄 수 있었다. 저마다 눈의 색깔도 모양도 달랐지만 모두 산전수전 다 겪은 듯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톰이 주변을 둘러보며 잠시 멈칫하자 조용하던 분위기에서 다시 소곤소곤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하.. 하하 제 발로 걸어들어오는 용감한 고양이가 있단 말이지?

톰은 자신을 둘러싼 공기의 무게가 점점 무거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온도도 마찬가지로 싸늘해졌다. 자신에게 꽂히는 시선이 점점 늘어났다. 하나도 빠짐없이 곱지 않은 시선들이었다.

만만해 보이는 상대가 저들 앞에 제 발로 나타나니 반갑겠지.
재밌는 놀잇감이 생겼군 그래...

톰의 생각처럼 패거리는 톰을 유흥거리 바라보듯 여기고 있었다.

톰은 그런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이겨내고 제리를 구하기 위해 용기를 내어 더 다가갔다.

제리를 구해야만 해. 여기서 물러설 수 없어.

톰은 떨리는 몸과 함께 긴장한 것을 들키지 않으려 애써 크게 한 걸음을 내디뎠다. 문지기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그를 지나쳐갔다. 괜히 입을 열었다간 자신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켜버릴 것 같았다. 톰이 대답하지 않자 뒤에서 문지기가 어이없어하는 소리가 들린다. 다른 고양이가 다시 톰한테 물었다.

여기는 왜 온 거지?
우리는 두 번까지만 묻는다.
또 대답이 없다면 바로 쫓아낼 거야.

톰은 자신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키지 않도록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 대답했다.

제가 원래 있던 곳에서 나와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됐는데 이곳에 오면 절 받아줄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왔습니다.

톰은 최대한 침착하게 보이려고 노력했고 제리를 찾으면 몰래 도망칠 계획이었다. 자신의 소굴에 낯선 이가 들어온 것을 못마땅해하며 고양이들이 눈을 날카롭게 빛냈다. 애써 길고양이의 시선을 외면하면서도 톰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제리를 찾았다. 그때, 제리를 납치한 그 고양이가 자신의 우두머리에게 얘기하듯이 말을 꺼냈다.

참 맛있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형님? 

제리는 어떤 고양이에게 꼬리를 잡혀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 몸이 축 늘어진 모습이 극한의 공포에 기절해버린 듯했다.

제... 제리!!

톰은 제리가 금방이라도 잡아먹힐 것 같아 두려웠다. 여기에 들어온 이유를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앞에서 침착하게 대답을 했던 것이었지만 제리의 모습을 보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톰은 자신도 무서웠지만 용기를 내 말을 내뱉었다.

뭐야 너희! 내 친구한테서 그 더러운 손 떼지 못해?! 좋은 말 할 때 어서 내 친구를 풀어 줘!

톰은 제리를 붙잡은 고양이들을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그들을 위협했다. 사실 톰은 생각보다 많은 숫자의 고양이를 보고 당황했지만, 제리를 구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절대 기죽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몸을 부풀리기 시작했다. 과거의 톰은 없지만, 우정으로 불타는 톰의 모습은 건재했다. 이런 톰의 노력이 빛바랜 걸까. 그들은 여전히 비웃으면서 언제 톰을 덮칠까 생각하고 있었다.

옆 동네 식구 고양이인 거 같은데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형님!

어둠 속에서 무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아서 조용하게 처리해라.
시끄러운 건 질색이니까

고양이들의 두목인 듯, 그의 한없이 낮은 목소리에서 힘이 느껴졌다.

자~ 드가자~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던 길고양이들이 어둠 속에서 나타나 톰에게 다가갔다. 막상 눈앞에서 고양이들을 보니 톰은 잔뜩 겁먹었다. 그 고양이들은 덩치가 자신보다 2배는 컸고, 제리를 구하겠다는 다짐은 어디로 숨었는지 톰은 겁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이봐... 옆 동네 고양이가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단순히 내 친구를 구하러 온 거뿐이라고..!
제리를 놓아주면 조용히.. 

톰이 말하던 걸 듣던 고양이가 비웃으며 말했다.

이 조그마한 쥐가 네 친구라고? 
형님, 이 고양이가 하는 말 좀 들어보십쇼. 이렇게 맛있어 보이는 쥐와 친구라니, 웃기지 않습니까?
하하하하하하하!
어떻게 고양이와 쥐가 친구가 될 수 있겠습니까? 분명 자신의 먹이를 돌려받으려고 거짓말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확실합니다 형님!

길고양이들은 먹이를 보고 친구라고 말하는 톰의 말에 어이없어하며 배꼽을 잡으며 웃었다. 하지만 그들과 달리 톰은 웃을 수가 없었다. 점점 몸이 굳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때, 어둠 속에서 한 고양이가 걸어 나왔다.

고양이들의 먹잇감에 불과한 쥐를 친구라 부르는 고양이라...
내가 알기론 이런 특이한 조합은 하나밖에 없지.
정말 오랜만이군.
안 그런가 톰? 

그 고양이는 잭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배부른 집고양이가 여기엔 무슨 일일까? 그 고귀한 두 발로 직접 여길 들어오다니 말이야.
아니 자세히 보니 지금은 영 집고양이 행색이 아니네? 가출이라도 한 모양이지? 
집사한테 작은 반항심이라도 생긴 거야?
아니면 드디어 네가 길거리를 버리고 선택했던 그 새장 속의 삶이 허황됨을 깨달은 건가?
이제서야? 하! 하! 하! 이럴 거면 진작 내 말을 들을 것이지! 

잭이 톰을 비웃으며 말했다. 길고양이들의 조소와 야유가 톰을 향했다. 하지만 톰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진짜 잭이었어?

톰은 전에 자신이 본 고양이가 정말 잭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래, 톰. 오랜만이야? 어때, 잘 지냈어? 행색을 보아하니 이미 알만 하지만. 후후

어둠에서 모습을 드러낸 잭은 고양이 무리 속 한가운데서 고고하게 자리 잡고 앉아 톰에게 말을 이어갔다.

아까는 그저 굶어가는 가여운 고양이인 척해 봤지만… 역시나 나인지 몰라보고 제 먹이도 내주더군.
정말이지 감동이었어 톰.
하지만, 길고양이 시절은 다 잊은 모양이야. 먹이를 나눠주는 여유도 부리다니.
지금 네 꼴을 보니 아주 우습구나. 

오랜만에 만난 잭은 예전보다 초췌해져 있었다. 옛날과 전혀 다른 고양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톰이 잭을 바로 알아보지 못한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원래도 삐딱한 인상이긴 했지만, 예전보다 훨씬 탁하고 날카로운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톰은 잭이 종적을 감춘 이후 어떻게 지냈는지, 그리고 왜 길고양이들의 소굴에서 우두머리 역할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궁금증을 해결하는 것보다 제리를 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잭, 그 쥐는 제리야. 얼른 놔줘. 제리가 먼저 너를 알아보고 찾으러 다녔어.
우린 여기까지 너를 찾으러 온 거야 믿어줘.

하지만 잭은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군침을 삼켰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심하다는 듯이 톰에게 말했다.

제리? 하하 넌 아직도 그 쥐랑 다니나 보군. 정말 변한 게 하나도 없어.

잭은 비웃던 것을 멈추고, 톰을 노려보며 말했다.

톰, 정말로 쥐와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순진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쥐는 그저 우리의 먹잇감일 뿐이야.
네가 그 쥐를 가지고 노는 줄 알았는데... 역시 멍청한 건 여전하구나.
아우들아, 내가 먼저 한 입을 먹을 테니 너희들은 그다음에 알아서 나눠 먹도록 해라.

제리의 꼬리를 물고 있었던 고양이가 기절한 제리를 땅바닥에 내려놓자, 잭은 입맛을 다시며 제리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안 돼!!! 멈춰!!!

일순간 톰의 머릿속에는 제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톰은 앞뒤 생각할 겨를 없이 잭에게 달려들어 얼굴을 할퀴었다. 잭은 뛰어난 반사 신경으로 치명상을 입는 것은 피했지만 스친 왼쪽 볼에서 피가 조금 흘러내렸다. 잭은 갑작스러운 톰의 공격에 눈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내 가소롭다는 듯 웃고는 톰을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그 순간 제리가 벌떡 일어나 톰을 향해 달려갔다.

똑똑한 제리는 검은 그림자에게 잡힌 후 기절한 척해서 사냥꾼이 방심하도록 만들고, 실눈을 뜨고 상황을 지켜보며 도망칠 순간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톰은 안간힘을 써서 달려오는 제리를 재빠르게 붙잡고 잭과 간격을 벌렸다. 하지만 이미 도망가기에는 늦었다. 잭이 공격당하자마자 그를 따르는 길고양이 무리가 출구를 가로막고 그 주위를 둘러싸서 톰과 제리를 포위했기 때문이다.

톰, 죽고 싶은가 보구나. 또 그때와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겠다는 거냐?

잭이 분노에 가득 찬 표정으로 말했다. 톰은 제리를 잡아먹으려는 잭을 반사적으로 공격하였지만, 잭의 말을 듣자마자 잊고 있었던 공포를 느꼈다. 주위를 살펴보니 앞에서는 잭이 점점 다가오고, 뒤에서는 잭의 무리가 톰을 감싸고 있었다. 톰은 패닉 상태에 빠져 아무런 대책을 세울 수가 없었다.

그래.. 예전에도 이런 상황이었던 것 같은데..

한창 톰이 미야에게 사랑에 빠졌을 때 잭과 싸운 적이 있었다. 미야를 향한 톰의 마음이 너무 커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었기 때문일까? 잭은 쉽게 톰의 마음을 알아챘고, 톰의 행동을 석연치 않아 했다. 왜냐하면, 톰이 미야를 좋아했던 것과는 상관없이 미야의 짝은 잭이었기 때문이다. 톰이 잭보다 미야를 먼저 좋아했던 건 사실이나 이는 자신만이 알고 있었던 마음이고, 이를 잭은 알 리가 없었다. 이러한 상황이기에 미야를 좋아하는 듯한 톰의 행동이 잭의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톰이 미야와 함께 있는 걸 발견한 잭은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끝내 표출하고 말았다.

톰... 적당히 봐주니까 정말 끝까지 기어오르는구나..!
한 번도 아니고 계속해서 내 짝을 넘봐?!

분노한 잭은 자신의 무리를 데려와 톰이 다신 미야에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했다. 그때에도 지금처럼 톰은 잭의 무리에 둘러싸였고 수적 열세 때문에 지고 말았다.

다신 미야에게 얼씬거리지 마...
한 번 더 내 경고를 무시하면 그땐 진짜 죽여버리겠어...

잭은 톰을 반죽음까지 몰고 갔었고 그때의 기억은 톰에게 끔찍한 공포로 새겨졌다. 톰이 집고양이가 된 것도 그때의 공포가 이유였다. 당시 톰은 너무나도 깊은 상처를 입어 아주 천천히 걸어가다 결국 쓰러졌다. 우연히 쓰러져 있는 톰을 가족들이 발견하고 치료해준 덕분에 간신히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톰은 다시 잭에게 덤비지 못했다. 그리고 미야를, 톰에게 가장 소중했던 존재를 다신 볼 수 없었다. 그때와 비슷한 상황에 처하자 톰은 그 순간의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깐, 톰은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에 두려움을 느꼈다.

'어떡하지? 이대로 죽는 걸까?
아니야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나갈 수 있는 법, 정신 차리자 톰!'

톰은 두려웠지만 두렵다는 생각보다 여기서 살아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그리고 더는 잭에게 자신의 소중한 존재를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미야에 이어 제리마저 잃을 수는 없었다.

잭, 너에게 제리마저 빼앗길 수는 없어.
소중한 존재를 잃는 것은 미야로도 충분했어!

길고양이 동료들과도 척을 진 상태고 품을 벗어난 것 또한 톰 스스로의 의지였다. 지금의 톰에겐 제리가 유일한 친구이자 가족이기에 제리마저 없어진다면 톰은 정말 혼자가 되는 것이었다. 톰에게 그런 일은 죽는 것만큼이나 두려웠고 그러기에 제리를 목숨을 다해 지켜내야만 했다. 톰은 제리를 데리고 탈출하겠다고 다짐했다.

반드시 함께 살아남자... 제리!

그러한 톰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잭은 옅은 웃음을 띠며 톰에게 점점 다가왔다. 잭의 무리도 톰을 놀리듯 고약한 웃음을 선사하고 있었다. 한편 톰과 같이 두려워하던 제리 또한 톰과 같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는지 몸의 떨림이 점차 사그라들었고,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톰에게 다가가던 잭은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낸 채 톰에게 뛰어들 준비를 했다. 그 순간, 어디선가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톰 형님! 이쪽이에요!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포키였다. 왼쪽 구석에서 등장한 포키는 담장에 있는 구멍에서 얼굴만을 내밀고 있었다.

포키, 네가 여길 어떻게...?

예상치 못한 존재의 등장에 놀란 톰이 말했다.

그건 나중에 설명할게요! 빨리!

톰!! 어서 저쪽으로 도망치자!

제리가 구멍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톰은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담장을 향해 달렸다. 그러곤 제리에게 말했다.

제리 어서 내 앞발 위에 올라타!!

제리는 순식간에 톰의 발에 올라탔다. 오랜만에 둘의 콤비를 보여줄 기회였다.

좋아 제리, 꽉 잡고 있어!

제리는 떨어질세라 톰의 앞발을 꽉 잡고 매달린 채 톰과 달아나기 시작했다. 담장에 난 구멍은 조그만 고양이 한 마리가 빠져나갈 수 있는 크기였기에, 잭의 무리는 톰과 제리를 빠르게 쫓아올 수 없었다. 하지만 톰과 제리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담장을 통과하고 나서도 계속 뛰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그저 그 무리로부터 최대한 멀리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이 때문에 톰과 제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계속해서 앞으로 달리고, 또 달려 나갔다. 그렇게 한참을 달렸을 때, 쫓아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톰은 뛰는 것을 멈추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공터로 돌아와 있었다. 정신없이 달리기만 하느라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몰랐지만, 다행히 알만한 곳으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톰은 혹시 누가 쫓아오고 있는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헥헥... 너 정말 달리기가 빠르구나..

포키가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톰이 지나온 길을 따라오고 있었다.

포키! 괜찮아..?

톰은 정신없이 달리느라 도망에 도움을 준 포키의 존재를 잠시 잊고 있었다.

그나저나.. 네가 어떻게 거기에..?
그게.. 길 돌아다니다가 톰 형님이 어두운 골목에 들어가길래 걱정돼서 따라왔어요.
그런데 왜 집에 돌아가지 않고 여기에 있었던 거죠? 여긴 아주 위험한 곳이에요...

제리는 위험했던 순간을 되돌아보며 톰을 대신해 대답하려고 했다. 하지만 톰은 제리에게 대답하지 말라고 손짓했다. 생각보다 위험했던 사건에 포키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깐 그렇게 됐네...
포키, 당분간은 몸을 사리는 게 좋을 것 같아. 
아까 그 녀석들이 너의 얼굴을 알아버렸으니깐 위험할 거야. 
그래도 아주 찰나였으니... 그 녀석들의 기억이 희미해질 때까지 조심해.

또한 톰은 포키 덕분에 그곳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어서 고마움을 느꼈다. 포키 또한 아까의 자신처럼 어두운 굴이 무서웠을 텐데 말이다.

만약 내가 포키였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다른 고양이를 구하러 왔을까? 

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생각하면 할수록 아무래도 포키가 더욱 존경스럽게 느껴져 감사 인사를 전했다.

포키 정말 고마워... 다음에는 내가 참치캔 양보할게..

포키는 웃으며 말했다.

에이... 톰 형님 저희 사이에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걱정 마세요! 저 녀석들이랑 마주칠 일은 없을 거예요! 저는 이 동네에서 떨어진 곳에 살거든요.
오늘은 산책 차 들렀다가 우연히 형님을 보게 된 거예요.
그럼 저는 이만 가야 할 곳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답례라도 할게!.. 잘 가!

톰은 포키와의 대화를 끝나고 제리 쪽으로 돌아보았다. 제리는 너무나 달라진 잭의 모습에 당황한 듯 생각에 빠져있었다. 톰은 적잖게 당황하는 제리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제리. 괜찮아? 

살아나가는 것에만 모든 신경을 쏟았던 시간이 지나자 제리의 머릿속에는 너무나도 달라진 잭의 모습과 그가 뱉은 말들이 끊임없이 맴돌았다. 제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선 톰에게 물었다.

톰.. 잭이 왜 저렇게 변한 거야? 
잭이 사라졌을 때... 그때 무슨 일이 생겼던 게 분명해!
고양이가 저렇게 한순간에 바뀌기가 쉽지 않잖아..?
뭔가 이상해...
그러게.. 나와 다툼이 있었던 과거에도 이렇진 않았어. 성격이 날카롭긴 했지만 지금은 아예 눈빛부터 달라.
뭔가 악령이 씌워진 듯한 느낌이었어. 아무리 나쁜 무리와 지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변할 수는 없을 거야. 
제리, 내 생각엔 평범한 원인은 아닌 것 같아..!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어...
뭐 때문에 저렇게 변하게 된 거지? 우리 그 원인이 무엇일지 생각해보자.

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잭이 그동안 대체 어떤 일을 겪었길래 이렇게 변했을지 곰곰이 추측해보았다. 그러다 문득 TV에서 보았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노을 너머의 세계를 갔다 온 몇몇 사람들이 이상해졌다는 이야기였다. 설마 노을 너머의 세계 때문일까?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찾은 것처럼 톰의 눈빛이 반짝였다. 톰은 제리에게 말했다.

... 노을 너머 세계.... TV에서 봤었어..
그래..!!! 잭은 노을 너머 세계에 갔던 게 분명해! 거기서 이상해진 게 틀림없어!
제리, 어쩌면 우리가 모험을 떠나 노을 너머의 세계에 도착한다면 모든 진실을 알 수 있을지도 몰라.

톰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제리는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뭐?! 톰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잭이 이상해진 원인이 노을 너머 세계에 다녀와서라고?
그게 어딘데? 게다가 TV에서 본 노을 너머 세계를 길고양이로 살아온 잭이 알 리가 없잖아. 
그런 이상한 이유보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거야.
혹시 미야와 관련되어 있지는 않을까?

그러나 톰의 귀에 제리의 말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톰의 머릿속에는 TV 속 노을 세계가 가득 차 있었다.

잭이 변한 이유가 바로 노을 너머의 세계 때문이라고 톰은 확신했다.

아니야 분명 잭은 노을 너머의 세계에 다녀온 거야. 그래서 저렇게 변해버린 걸 거야.
상점가에 있는 TV를 엿보고 알게 됐을 수도 있어. 아니면 우연히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노을 너머 세계에 가게 되었다던가!

제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노을 너머의 세계 때문이라니,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래, 그렇다 치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건데?
우린 노을 너머의 세계에 대해 아는 게 없는걸? 그리고 변해버린 잭에 대해서도.. 
우리도 저렇게 변해버릴지도 몰라.

톰도 바닥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하.. 노을 너머 세계에 대한 것을 알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어디 정보를 얻을 만한 곳이 없을까?

톰은 정보를 얻을 만한 곳이 없는지 생각에 잠겼다. 그때 제리가 무언가가 생각난 듯이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음.. 아! 톰, 대장 바퀴한테 물어보는 건 어때?
그는 모르는 게 없어 보이던데?
좋아, 그럼 일단 대장 바퀴를 찾아보자. 아까 우리가 바퀴들을 봤던 골목에서 크게 멀어지지 않았을 거야.

바퀴들은 무리 생활을 한다. 바퀴 무리를 찾으면 대장 바퀴가 그곳에 있을 확률이 높다. 톰과 제리는 대장 바퀴를 찾아 이전에 바퀴들을 만났던 골목으로 다시 들어갔다. 요즘 도시 사람들은 바퀴벌레를 아주 싫어하기 때문에 바퀴벌레 약을 곳곳에 사용한다. 그래서 바퀴들은 이사를 자주 다닐 수밖에 없다. 서둘러서 바퀴 무리를 찾지 않으면 놓치기 쉽다. 다행히 분주히 이사 준비를 하는 바퀴 무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바퀴 무리들도 마침 톰의 가족들이 톰을 찾고 있다는 것을 전하려고 톰을 찾고 있었다.

톰!! 우리가 너에게 할 말이 있..
대장 바퀴는 어디 있어?!

톰이 급하게 말을 끊고 대장 바퀴부터 찾았다. 톰에게 가족에 대한 말을 전하려던 바퀴는 급박해 보이는 톰의 표정을 보고 얼른 대장 바퀴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응?! 저기 뒤에 있어..

톰과 제리는 대장 바퀴에게 갔다.

톰과 제리를 본 대장 바퀴는 톰에게 톰의 가족들이 톰을 찾고 있다는 것을 말하려고 했다.

톰! 어디 있었던 거야!? 너희 집 가족들이 널...

하지만 톰의 대장 바퀴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톰의 머릿속은 온통 노을 너머에 세계에 관한 것들뿐이었다. 톰은 자신의 마음을 완전히 바꿔줄 대장 바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에게 외쳤다.

대장 바퀴!! 혹시 노을 너머 세계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니?? 

그러자 대장 바퀴의 눈이 얼음처럼 차갑게 굳었다.

...대장 바퀴...?

대장 바퀴는 곧 표정을 풀더니 모르는 척을 하며 이내 톰에게 되물었다.

노을 너머 세계? 난 그런 곳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어. 왜 갑자기 급하게 물어보는 거지?

대장 바퀴가 모르는 눈치를 보이자 톰은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가려 했다. 톰의 심상치 않는 표정이 걱정스러워 대장 바퀴는 톰에게 무슨일이 있어 이렇게 급한지 물었다.

톰, 갑자기 와서 난데없이 노을 너머 세계를 찾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대장 바퀴의 물음에 톰은 숨을 한번 고르고 좀 전에 일어났던 사건을 그에게 말했다.

아이고... 하마터면 제리를 다시는 볼 수 없을 지경에 이를 뻔했군... 

대장 바퀴는 톰의 이야기를 듣더니 처음과는 달리 마치 그곳을 아는 듯한 말투로 톰에게 물었다.

그래서 톰, 네가 지금 추측하는 그 노을 넘어 세계라는 곳이 정말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고 생각하는 거니?
어? 아니 정확히는 모르지만 내 추측이 맞는다면 분명히 그 노을 넘어 세계는 특별해. 
너라면 그 세계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정말 모르는 거야...?

대장 바퀴는 톰과 제리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그들이 지금 얼마나 간절한지 알 수 있었다. 대장 바퀴는 잠시 망설이나 싶더니 이내 대답했다.

노을 너머 세계는 나도 가본 적이 없어서 그저 풍문으로만 들은 얘기야.
그 세계는 말이야... 
너희 혹시 동화 "오즈의 마법사"는 알고있니?
응! 알지!
도로시와 친구들이 소원을 이루기 위해 위대한 마법사 오즈를 만나러 가는 내용이잖아!
전에 집사의 집에서 막내 집사가 읽어준 적이 있어.
근데 그건 왜 물어봐?
노을 너머 세계가 바로 그런 곳이야.

대장 바퀴의 이야기를 듣던 톰과 제리의 입이 동시에 벌어졌다. 하지만 다소 감이 오지 않는 듯 어리둥절해 했다.

잘 이해가 안 돼...
"오즈의 마법사"랑 그곳이 무슨 상관인데?
"오즈의 마법사"는 노을 너머의 세계에 갔던 사람이 쓴 책이고.
그곳에는 오즈처럼 마법사가 있다고 해.  

대장 바퀴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하나하나 고르고 골라 말을 조심스럽게 잇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소원을 들어주는, 마법사 말이야.

톰과 제리는 대장 바퀴의 놀라운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여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이 이상은 아무리 우리라도 말하기가 어려워. 정작 우리조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니까.
도움이 되었길 바라.

대장 바퀴는 말끝을 흐리며 말을 마쳤다.

음... 그러니까 노을 너머 세계에 가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지....? 
대장 바퀴야, 혹시 그 노을 너머 세계에 가는 방법을 말해 줄 수 있니?

다시금 제리와 톰은 간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대장 바퀴는 톰의 질문을 듣고 잠시 고민을 하더니 이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음... 전에 먹이 찾는 것을 도와줬으니 특별히 말해 줄게.
노을 너머 세계는 단순히 가고 싶다는 열망 하나만으로 아무나 갈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야.
마법사가 직접 노을 너머 세계에 올 사람을 선택하고 오직 '선택'받은 것들만 노을 너머 세계로 갈 수 있게 되어있어.
내가 듣기로 노을 너머 세계의 마법사는 선택의 증표로 '구슬'을 준다고 했어. 그 구슬이 없으면 그 누구도 그 세계에 접근할 수 없어. 
아... 구슬... 그 구슬은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는 거지...?

대장 바퀴로부터 노을 넘어의 세계에 가려면 구슬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은 톰은 암담해졌다. 제리는 잠깐 생각을 하더니 깜짝 놀라며 톰에게 말했다.

혹시.. 톰, 우리 모험을 떠나기 전 만났던 그 할머니가 마법사였던 거 아닐까?

제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톰의 목에 걸려있던 오색빛깔 복주머니를 풀어 그 안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톰!! 이것 봐!! 구슬이야!! 역시 그 할머니가 마법사였어!

대장 바퀴는 톰과 제리가 선택받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너희는 선택받았구나. 그럼, 말이 달라지지. 나는 선택받은 자들에게만 노을 너머 세계로 향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어.
아깐 너희가 선택받은 자들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말해줄 수 없었던 거고.
원래 처음에 얻게 되는 구슬은 옥빛을 띠지.
하지만 많은 경험을 하다 보면 그 구슬은 노을빛으로 변하게 돼.
이미 너희의 구슬은 노을빛이 되기 직전이네.
이제 곧 그 구슬이 하나의 세계가 되어서, 너희를 빨아들일 거야. 그리고 도착할 곳이 바로 노을 너머의 세계야. 
그 뒤론 나도 안 가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지만,
그 노을 너머의 세계에서 탐욕을 부리거나, 규칙을 어기면 나올 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온다는 소문이 있어.

대장 바퀴의 눈빛이 겁을 주듯이 살벌하게 바뀌었다. 그러나 톰과 제리는 서로 바라보고는 기쁘다는 듯이 웃음을 지었다. 마치 장난감을 얻은 어린아이 같은 설렘이 담겨 있는 듯했다.

노을 너머 세계로 갈 수 있다니!
그곳에서 잭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아내겠어!

대장 바퀴는 마음 한구석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신나서 손을 잡고 방방 뛰는 톰과 제리의 모습이 귀여워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이 사실을 알려줬던 애들 중에 너희처럼 신나하는 애들은 처음이야...
하여튼, 노을 너머의 세계로 가고 싶다면 아무도 없는 어두운 골목길에서 그 구슬을 꺼내 보렴.
그럼 너희를 그 세계로 빨아들일 무언가가 나타날 거야.

아, 그리고 명심해야 해! 
꼭 노을이 지는 그 순간에 구슬을 꺼내봐야 한다는 것을.
노을만이 너희를 노을 너머의 세계로 인도해 줄 수 있을 테니까...
그럼, 우린 이만 가볼게. 톰, 제리.. 행운을 빌어.

한편, 대장 바퀴와 톰, 제리의 대화를 한쪽 구석에서 모두 엿듣고 있는 이가 있었다. 바로 골목길을 나오는 순간부터 그들을 멀리서 추적하며 쫓아온 슬링키였다.

노을 너머의 세계로 향하는군.. 
들어보니, 그곳에는 숨겨진 보물이 있다던데.
톰의 구슬을 빼앗으면 갈 수 있지 않을까?
부하들을 시켜서 구슬을 가져야겠군..
이 슬링키가 못 가는 곳은 없어..! 후후후, 보물은 전부 내 차지다!

슬링키는 톰과 제리, 바퀴로부터 몸을 숨길 수 있는 구석진 상자 뒤에 숨어있었다. 그들이 노을 너머의 세계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슬링키 또한 그들을 따라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전에 먼저 톰에게 있는 구슬을 가로채야 했으므로, 부하들을 데리고 다시 톰과 제리를 찾을 것을 결심하며, 슬링키는 등을 돌려 떠났다.

제리는 노을 너머 세계에서 잭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 더욱 궁금해졌다. 톰은 노을 너머 세계로 향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고, 그곳에서 자신을 돌보아줄 집사와 다시 행복해지는 상상을 했다. 그러나 잭에 대한 찝찝함은 가슴 한구석에 남아있었다.

그래도 우리가 노을 너머의 세계로 갈 수 있다니..! 정말 다행이야. 
대장 바퀴야 고마워. 많은 도움이 됐어. 잘 가.

톰의 인사 후 대장 바퀴와 바퀴들은 사라졌다.

톰, 얼른 가자!
그래!

방금 있었던 위험한 일은 까맣게 잊은 건지, 톰과 제리는 흥분된 마음으로 바퀴에게 인사를 건네고 떠났다.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 채로...

한편, 돌아가는 길에 바퀴 무리 중 하나가 대장 바퀴에게 물었다.

대장, 톰에게 가족들이 찾는다고 말했나요?
아니, 말하지 않았어...
말 안 하셨다고요?! 지금이라도 가서 말..
아니, 아직은 말하지 말자. 톰은 지금 가야 할 곳이 있어.
톰네 가족들은 애가 타겠지만 나는 톰의 꿈을 좀 더 밀어주고 싶어.

대장...

그때, 갑자기 커다란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대장 바퀴의 몸집을 훨씬 능가하는 거대한 그림자였다.

고양이 한 마리하고 쥐 한 마리가 왔었냐?
얼핏 듣기론 이름이 톰, 제리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아는 대로 대답해.

톰과 제리가 떠난 후 잭이 대장 바퀴를 찾아온 것이다. 대장 바퀴는 긴장했지만 톰과 제리를 위해 거짓말을 했다.

아니? 본 적 없는데?
우리는 톰, 제리가 누군지도 몰라.
왜 가만히 있는 우리에게 와서 그러는 거야!

잭은 화를 내며 말했다.

죽고 싶지 않으면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을 거야..
너희가 거짓말을 친 거라면 그 대가를 혹독히 치르게 해주지.

잭이 협박을 하자 바퀴벌레 무리들이 두려움에 질렸다. 대장 바퀴는 자신이 이끄는 무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톰과 제리의 행방을 말했다.

미... 미안해. 잘못했어. 걔네 둘, 노을 너머 세계로 갔어...

잭은 톰과 제리가 향한 곳이 의외인 듯 두 눈이 잠시 흔들렸다. 하지만, 금세 표정을 지운 후,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잭은 바퀴벌레 무리를 보내고 웃으며 톰과 제리가 향한 방향을 가만히 지켜봤다...

톰과 제리를 지켜보는 것도 잠시 잭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주변을 둘러봤다.

넌 누구냐! 왜 나를 따라다니는 것이지?

자신을 지켜보던 누군가를 발견한 듯 잭은 소리쳤다. 그러자 전봇대 뒤에서 어슬렁거리며 개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그 개는 바로 슬링키였다. 잭은 바로 자세를 고쳐 잡아 경계 태세를 취했다.

어이 고양이. 나는 슬링키라고 한다네.
톰과 제리에게 원한이 있는 것 같은데 나와 함께하지 않겠나?
떠돌이 개 따위가 어떻게 나랑 함께할 수 있다는 거지?
개와 고양이의 사이는 원수라는 것을 잊은 건가?
우리의 원수지간은 잠시 넣어두고 톰과 제리를 먼저 잡는 것은 어때?
저 복수가 먼저일듯한데.

슬링키와 대화를 나눈 잭은 잠시 고민하더니 답했다.

좋아 톰과 제리를 잡아서 복수할 때까지만 동맹을 맺자고..
나는 예전과 달리 기력이 쇠해 혼자 사냥을 하려면 시간이 걸릴 거야.
내가 구슬을 가지고 있으니 넌 나에게 힘을 빌려줘.
내 이름은 잭이다 앞으로 잘 부탁해. 
좋아 잭, 협상 완료 군. 
부하들을 시켜 구슬을 찾으러 다니는 고생은 안 해도 되겠어. 

톰과 제리는 자신들을 쫓는 잭과 슬링키를 꿈에도 모른 채 들뜬 마음으로 길을 떠났다. 제리와 톰은 어두운 골목을 찾아 그곳에서 구슬을 꺼냈다. 구슬을 쥐고 있던 손을 살며시 편 그 순간, 톰과 제리는 무언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갑자기 주변에 환한 빛이 일기 시작하더니 마치 누군가가 마법을 부리는 양 구슬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crystal

결국 번개처럼 반짝하며 눈 부신 빛이 반짝거리더니, 톰과 제리의 눈앞이 아득해졌다.

톰! 나 지금 눈앞이 너무 어지러워!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그렇게 톰과 제리가 어지러움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무렵, 그들의 눈앞에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희미하게 보이기는 했지만, 이것은 분명 문 손잡이가 분명했다.

제리! 으윽... 너 이거 보여? 나만 보이는 거 아니지?

서서히 문 손잡이의 형태는 더욱 뚜렷해졌다.

나도 보여! 이걸 돌려야만 노을 너머의 세계로 가는 것 같아...
으으... 일단 빨리 돌리자. 나 지금 기절할 것 같아!

문 손잡이를 돌리지 않으면 금방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문 너머에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일단 이 어지러움에서 벗어나야 했다. 톰과 제리는 어지러운 정신을 붙잡고 힘겹게 심호흡을 하고 문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마지막 남은 힘으로 문 손잡이를 돌린 톰과 제리의 눈에 비친 것은 긴 통로와 그 끝에 있는 조그마한 문이었다. 그들은 그 모습을 눈에 담으며 정신을 잃었다.

...
...나...!
...톰 일어나!
톰! 우리 노을 너머의 세계에 도착했어!

톰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눈을 떴다. 제리가 톰의 몸을 흔들며 그를 깨우고 있었다. 몸을 일으킨 톰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둘은 사방이 모두 거울로 이루어진 긴 복도 가운데 있었다. 그리고 복도의 끝엔 황금색의 문이 있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원래의 톰과 제리의 모습이 아니었다. 거울은 그들이 되고 싶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제리가 거울 속 톰을 가리키며 말했다.

톰, 네 털 좀 봐봐! 윤기가 넘쳐흐르는걸?
몸도 엄청 좋아졌어!!! 진짜 멋있는데??

톰은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의 털을 쓰다듬었다. 거울 속 모습은 꽤나 마음에 들었다. 톰의 모습은 톰이 항상 상상만 해왔던 모습이었다. 근육질에 윤기 흐르는 매끈한 털에... 이상하게 톰은 몸에서 힘이 넘쳐나는 느낌이 들었다. 이 상태로는 잭이든 슬링키든 다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제리를 보며 말했다.

제리 너도 덩치가 많이 커진 것 같아!
우와, 이 정도면 잭과 싸워도 거뜬히 이길 수 있겠어!!!

제리가 근육을 뽐내며 우쭐댔다. 영리함이 무기였던 제리인데, 거울 속 모습이라면 어떤 방면으로든 잭에게도 밀릴 것이 없을 듯했다. 톰과 제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둘은 두려움과 설렘과 호기심이 복잡하게 뒤얽힌 마음을 품고 복도를 따라 문을 향해 걸어갔다.

이 문을 통해 나가야 되는 건가...?

가까이 다가가 보니 문은 꽤 컸다. 문은 황금색이었고 온갖 꽃무늬와 용무늬가 그려진 화려하고 아름다운 문이었다. 문의 중간에는 노을을 상징하는 듯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동그란 해무늬는 마치 쳐다보기라도 하는 듯 위압감을 느끼게 하였다.

황금색 문이 노을과 비슷해서 이 문을 지나가면 노을을 넘어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나 봐! 그래서 노을 넘어 세계라는 건가?

톰과 제리는 눈이 똥그랗게 커진 채로 사방을 둘러보며 앞으로 나아갔다. 둘이 문 앞에 서자 문이 스스로 열렸다. 그리고 둘이 문을 통과하자마자 문이 닫히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모든 것이 마법 같았다.

우와... 예쁘다... 우리가 살던 도시와는 전혀 달라!!
내가 정말로 노을 너머 세계에 올 줄이야!! 꿈만 같아!

톰과 제리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꽃으로 가득한 넓은 들판과 푸른 하늘이었다. 얼마 전까지 있었던 냄새나고 음습한 뒷골목과는 그야말로 천지차이였다.

한편, 톰과 제리가 떠난 후 바퀴벌레들은 그들의 행방을 잭이 알아차린 것을 두고 고민에 휩싸였다. 잭이 그들에게 어떤 해코지를 할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나 톰과 제리는 이미 노을 너머의 세계로 떠나버린 이후였고 그들이 돌아오기 전까지 바퀴벌레들이 노을 너머의 세계로 갈 방법은 없었다.

대장 어쩌죠, 그 무서운 고양이가 톰과 제리에게 무슨 일을 저지르면..!
우린 어쩔 수 없었어...그리고 이미 톰은 떠나버렸고... 이제는 톰이 올바른 선택을 해서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라야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그들이 선택한 일이니, 우리도 우리의 미래를 위해 새로운 보금자리와 먹이를 찾으러 가자.
알겠습니다, 대장!

다시 노을 너머의 세계, 방금까지 어둠 속에 있던 톰과 제리는 믿기지 않은 광경에 입이 떡 벌어졌다. 그들이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정말로 아름다운 동화 속 풍경 같았다. 노을 너머 세계라길래 어두운 밤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으로는 오랜만에 밝고 예쁜 꽃밭을 봐서 신났지만, 또 한편으로는 앞으로의 행보가 막막하여 한숨만 나왔다.

괜히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은 아니겠지...?

톰은 괜스레 두고 온 가족과 아늑했던 집이 마음에 걸렸다. 허기짐이 느껴지니 집사가 주던 사랑이 담긴 밥과 간식이 그리워졌다.

아... 배고파.. 맛있는 간식이라도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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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정말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하기만 했었는데..

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야?

제리가 톰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톰에게 다그친다.

아무것도 아니야! 제리! 

'가족들은 이제 나에게는 관심도 주지 않는걸..' 톰은 반드시 새로운 가족을 찾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되새기며 마음을 굳게 먹었다. 톰과 제리가 첫발을 내딛자 들판 사이로 길이 생겼다. 제리가 말했다.

이 길로 가라는 것일까?

톰이 그 길로 갈려는 동작을 보이자 제리는 톰을 붙잡아 세운다.

톰 잠깐만, 이 길로 가기 전에 생각을 해보자. 다음 계획이 있어? 
여기가 분명 노을 넘어의 세계는 맞는 듯한데 그 이후에 어디로 갈지 정하는 게 좋겠어

톰은 심히 고민하였다. 노을 너머의 세계로 간다고만 생각하였고 그다음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쎄? 노을 너머의 세계까지 온 것 좋은데, 그다음은 생각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네

제리는 톰에게 소리쳤다.

톰, 뭐야,,계획이 없던 거야? 그럼 우린 어떡해! 나가는 방법도 모르잖아!

그러자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피곤해서 들린 소리도 아닌, 바람 소리와 같은 자연의 소리도 아닌 분명 누군가 제리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것 같았다.

또 왔군. 
이번엔 고양이와 쥐라니..너넨 누구니?

깜짝 놀란 톰과 제리는 옆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말을 건넬만한 인물은 없었고 웬 허수아비만 있을 뿐이다. 당연히 허수아비가 제리의 말에 대답을 했을 리 없다고 생각한 톰은 제리에게 물었다.

제리... 방금 누군가가 말 걸지 않았어?
분명 아까 말소리가 들렸는데...?

톰이 목소리를 낮춰서 소곤소곤 제리에게 물었다. 제리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던 찰나에, 또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가라니! 나야 나!
이쪽이라고!
나! 허수아비라니깐!

톰과 제리는 깜짝 놀랐다.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분명 허수아비가 말을 건 것이었다. 그저 장식이라고 생각했던 허수아비가 웃으면서 톰과 제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허수아비는 톰과 제리가 알던 허수아비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 허름한 옷을 입고 허름한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래서 톰과 제리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허수아비에 옆에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던 찰나 허수아비가 말을 걸은 것이다.

톰은 그 순간 아까 대장 바퀴가 말해준 내용이 생각났다.

맞아, 아까 대장 바퀴가 이곳 노을 넘어의 세계가 '오즈의 마법사'의 배경이 되는 곳이라 했지?
그 허수아비가 여기 서있는 것과 같은 거 같은데, 그래도 조심해야겠다..
당신 누구야!
아니 그보다 허수아비가 말을 하다니!!?!

톰과 제리가 소리쳤다. 허수아비는 그러한 반응이 익숙한 듯이 아무렇지 않게 톰과 제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반갑다. 난 노을 너머 세계의 수문장 허수아비라고 해. 노을 너머 세계의 손님들에게 길을 안내하는 일을 하고 있지.

자신을 소개하는 허수아비의 얼굴은 투박한 실로 짜인 천에 눈 구멍 두 개 입 구멍 한 개가 뚫려 있었다. 까맣게 뚫린 두 눈은 마치 허공을 바라보는 듯 초점이 불명확했고, 허수아비가 말을 할 때마다 입 구멍 사이로 짚 풀이 비죽거렸다. 그 모습이 기괴하고 소름 끼쳐서 톰과 제리는 담담한 허수아비의 모습에도 경계를 풀 수 없었다. 잔뜩 경계하는 목소리로 제리가 물었다.

길이요? 무슨 길을 말하는 건가요?

제리의 물음에 허수아비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너희는 위대한 마법사 '미야미야'님을 만나러 노을 너머 세계에 온 거 아니야?

'미야미야'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봤지만, 소원을 들어주는 마법사임은 틀림없었다.

톰이 물었다.

미야미야라니 그게 누구죠?
이곳에 온 이방인들의 목적은 오직 하나! 바로, 위대하신 미야미야님을 만나 소원을 이루는 것!
절대적이고 전능하신 미야미야님은 이곳 노을 너머의 세계를 다스리고 계셔.
악한 자에게는 벌을 내리며, 선한 자에게는 소원을 이루어 주시고 앞으로의 역경을 이겨낼 힘을 주시지.
너희가 자격이 있다면 미야미야님을 만나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겠지. 하지만 아니라면 이곳에 온 걸 후회하게 될 거야.
그럼 그분을 만나려면 저흰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들판에 생긴 이 길을 따라 쭉 가면 다른 안내자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허수아비가 미심쩍었지만, 다른 방도가 없기에 톰과 제리는 길을 따라가기로 했다. 톰과 제리가 결심이 선 듯하자 허수아비는 그들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이 길은 너희에게 평탄하지만은 않을 거다!
길을 가다 보면 곳곳에서 너희를 위험에 빠뜨리는 난관들이 있을 수도 있어.
아니면 너희가 정말 원하는 것을 보여주며 너희를 유혹할 수도 있지.
여러 난관과 유혹을 떨쳐내고 이 길만을 따라서 가야 해!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이겨내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
윽... 너무 어려운 거 아니야?
'미야미야'님을 만나기 위해선 그 정도의 고난은 있어야지! 그저 길만 걷다 보면 만날 수 있을 줄 알았어?

당황한 톰과 제리, 그리고 그들을 우습게, 또 한편으로는 애석하게 바라보는 허수아비였다. 톰과 제리 같은 이방인을 한두 번 본 것이 아닐 터였다. 허수아비의 눈앞에는 그들의 고생길이 훤했다. 허수아비는 톰과 제리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들이 앞으로 가야 할 길은 어쩌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험한 길이기 때문이다. 이런 그들에게 허수아비는 힌트를 주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무런 기준 없이 시험에 들면 당연히 어렵기 마련이겠지.
내 특별히 너희들에게 무사히 길을 건널 수 있는 힌트를 주겠다.
전지전능한 미야미야님을 뵈러 가는 길인 만큼, 길에 있는 모든 유혹과 함정은 미야미야님의 작품이다.
너희들의 바람을 순간적으로 읽어 들여서 그를 현실화하고, 그 길로 너희들이 가장 혐오하는 것으로 이끌어 벌하시는 분이지.
따라서 생각에 대한 컨트롤을 잘해야 해. 
혹시 함정임이 의심되거든 생각을 바꿔보며 확인해보고, 함정에 걸려들었거든 얼른 싫어하는 것에 대해 좋아하는 것으로 바꿔 생각해!
물론 그게 쉽지는 않을 거야. 건투를 빈다. 미야미야님의 축복이 너희에게 있기를...

일단 허수아비의 말을 들은 톰과 제리는 그렇게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허수아비의 충고에 톰과 제리는 마음을 다잡고 길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늦은 밤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갖은 위기를 겪었지만, 결국 노을 너머 세계까지 발을 내디딘 그들이었다. 이번에도 무사히 목적을 이루고자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절대로 함정에 빠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자 허수아비는 톰과 제리를 보내며 작게 중얼거렸다.

얼마 전에 왔던 검은 고양이 잭이라는 놈은 지나친 욕망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해버리고 타락해버렸었지... 
너희는 올바른 선택을 하길 바랄게... 그리고 절대 '검은 마녀'와 마주치지 않기를...

다행인지 불행인지, 톰과 제리는 허수아비의 중얼거림을 듣지 못한 듯했다. 톰과 제리는 미야미야가 어떤 존재일지에 대해 대화를 하며 길을 걸었다. 제리가 말했다.

마법사라고 했어! 분명 푸른 눈에 신비한 모습을 하고 있을 거야.

톰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도무지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남자일지 여자일지, 노인일지 아이일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일지. 만약 미야미야를 마주치게 되었을 때 알아볼 수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 와중에도 제리는 톰의 옆에서 계속 재잘거렸다. 조금은 겁이 나는 톰과는 다르게 제리는 이번에도 자신 있어 보이는 표정이었다.

미야미야님을 만나면 뭘 해야 하는 거지? 마법사는 어떤 능력이 있으려나..
그리고 무슨 난관이 나타날까? 뭐가 나오든 나는 잘 이겨낼 자신 있어. 너무 기대된다. 그치, 톰? 
응응! 난 말이야, 미야미야님을 만나면 나를 평생 사랑해주는 가족을 찾게 해달라고 할 거야!
그래그래! 나도 네가 그 소원을 꼭 이룰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제리 너는? 너는 어떤 소원을 빌고 싶어?

나? 나는... 너랑 평생 행복하게 사는 거?! 맛있는 치즈를 배 터지게 먹으면서 말이야.
뭐야.. 감동인걸?! 우리 꼭 소원들 다 이루자!!

톰과 제리는 소원이 이뤄지는 상상을 하며 계속 걸어가고 있었다.

한참 동안 길을 걸은 것 같은데 이상하게 해의 위치가 변하지 않았다. 지금쯤 노을이 지고 깜깜한 밤이 왔어야 하는데, 여전히 노을이 진 해만 남아있었다. 한껏 들떠서 주변을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하고 있던 제리와 달리 톰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제리 뭔가 이상하지 않아?

톰이 말을 꺼내자 제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신나서 말했다. 아주 제리 다운 모습이었다.

톰, 너무 걱정하지 말라니까~ 난 벌써 너무 신나는 거 있지?

마냥 즐거워 보이는 제리와 달리, 톰은 자신이 느낀 의문점에 대해 말했다.

crystal

우리가 처음 들어왔을 때 분명 해가 금방이라도 질 것처럼 노을이 짙었는데 아직도 해가 지평선을 넘어가지 않았어...
여기가 노을 너머 세계인 이유가 이걸까? 이곳은 노을이 절대 지지 않는 세계인 건가 봐...!
시간이 멈춰서 흐르지 않는 세계인 거지! 그치? 그런 거지..?
그런가... 실은 난 잘 모르겠어. 톰, 난 얼른 마법사를 만나고 싶을 뿐이야...
어서 서두르기나 하자!

제리는 아까보다 빠른 발걸음으로 앞장서기 시작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고, 톰도 지지 않는 노을에 대해 더 이상 알아낼 것이 없었기 때문에 계속 걸었다. 끝이 없는 여정에 톰은 지쳐가고 있었다.

그때 톰의 정신을 깨우는 향긋한 향기가 났다. 톰의 눈빛이 말똥거렸다. 캣닢 냄새였다.

집사가 종종 주곤 했던 캣닢 냄새에 들뜬 톰은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다.

톰, 갑자기 왜 그렇게 빨리 가?! 기다려!

평범한 캣닢보다 향이 강한 탓에 톰은 제리의 외침을 들은 체 만 체 캣닢 냄새를 따라 달렸다. 톰이 캣닢을 찾는 것에 정신이 팔리는 동안 제리는 열심히 그의 뒤쫓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불안해하던 톰이 적극적으로 달리니 제리는 의아할 뿐이었다. 하지만 전속력으로 달리는 고양이를 따라잡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제리의 시야에서 톰이 사라졌다. 제리는 톰의 냄새를 찾으려고 노력했으나 주변의 강한 캣닢 냄새에 톰의 냄새가 가려져 톰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낯선 세계에서 톰을 잃어버린 제리.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법사를 만날 생각에 들떴던 마음이 한순간에 불안감으로 가득 찼다. 언제나 자신감으로 가득했던 제리였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톰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감도 안 잡혀...
이러다 톰을 영영 찾지 못하는 것 아닐까...?

제리는 톰을 뒤쫓다 자신도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곳이 어딘지 알 방법이 전혀 없었다. 노을 너머의 세계가 어떤 곳인지도 모르는데 친구마저 보이지 않고 자신조차 길을 잃었다는 사실에 제리는 눈앞이 캄캄했다. 갑자기, 캣닢 냄새는 더 이상 나지 않았다. 대신 치즈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톰을 찾던 자신을 잊어버릴 정도로 쥐를 유혹할 강렬한 냄새였다. 혼란스러운 마음 때문일까, 아니면 치즈의 강렬한 향 때문일까 제리는 무언가에 홀린 듯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먹어봤던 어떤 치즈보다도 향이 좋아...!

냄새를 찾아 따라가자 평평한 돌 위에 커다란 치즈가 놓여있었다. 마치 자신을 위한 만찬 같은 모습에 제리는 치즈만 보고 돌진했다. 치즈 앞에 거의 다다른 순간 제리는 그만 돌부리에 걸려 바닥을 굴렀다. 통증에 정신이 돌아온 제리는 허수아비의 말을 불현듯 떠올렸다.

여러 난관과 유혹들을 떨쳐내고 이 길만을 따라서 가야 해!

제리는 번뜩 정신이 들었고, 바로 뒷걸음질 치는 순간, 쾅, 하고 무엇인가 치즈 위로 떨어졌다. 제리의 몸집보다 훨씬 큰 거대한 치즈 덩어리였다. 함정이 틀림없었다. 제리는 아찔한 기분에 휩싸였다. 만약 자신이 돌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저 거대한 치즈는 자신 위로 떨어졌을 것이다.

저게 내 위로 떨어졌다면 나는 분명 죽었을 거야..
그렇다면 캣닢도 노을 너머 세계의 함정임에 틀림없어! 톰이 위험해!
톰을 찾아야만 해..!
톰!! 너 대체 어디 있는 거야!!!

.

한편, 톰은 캣닢향이 진하게 나는 밭의 중심부로 몸을 뒹굴며 향하고 있었고, 그곳에는 거대한 구멍이 있었다. 다행히도 톰을 찾아 무작정 뛰기 시작했던 제리는 운 좋게도 캣닢밭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정신없이 뒹구는 톰을 발견할 수 있었다. 톰을 발견한 제리는 곧바로 톰을 향해 소리쳤다.

톰 정신 차려! 이건 함정이야!!
노을 너머 세계에서 우리를 시험하기 위해 만든 함정이라고!

제리는 톰의 귀에 올라가 최대한 큰소리로 톰을 외쳤지만, 이미 캣닢 향에 취한 톰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았다. 제리는 거대한 구멍에 다가가 보았다. 구멍을 보자마자 제리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깊었고, 동굴처럼 뻥 뚫려있었다. 블랙홀처럼 빛조차 탈출할 수 없을 것 같은 검은 구멍이었다.

이 구멍에 빠지면 우린 끝장이야.. 톰을 막아야 해!

제리는 곧바로 톰에게 뛰어갔다. 제리는 캣닢 향에 취한 톰을 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나 자신보다 훨씬 덩치 큰 톰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톰을 발견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손쓸 수 없었던 제리는 답답함에 눈물이 나왔다. 제리가 어쩔 줄 몰라 할 동안 톰은 점점 구멍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제발 톰! 정신 차려!

제리는 계속해서 소리쳤지만, 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순간! 제리의 뒤에서 알 수 없는 정체가 순식간에 뛰쳐나와 톰에게로 달려갔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검은 얼룩을 가진 고양이었다. 고양이는 구멍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톰을 앞발로 후려쳤다.

아악!

톰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푸른 눈의 고양이가 톰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톰이 푸른 눈의 고양이를 보고 깜짝 놀라 굳어있자, 푸른 눈의 고양이가 먼저 입을 뗀다.

여긴, 어떻게 오게 된 거야?
우리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모험을 떠났어.
그러다 이곳에 소원을 들어주는 마법사 미야미야가 있다는 것을 듣고 왔어.
마법사를 찾아 길을 가는 중이었는데...
가는 중이었는데?

푸른 눈의 고양이가 실눈을 뜨며 의문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차분하고 기품 있는 목소리에 톰은 살짝 긴장하며 자세를 바꿔 앉았다.

나도 모르겠어. 분명 캣닢 냄새를 맡은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여기였어.

옆에서 제리가 말했다.

톰, 이건 허수아비가 말한 유혹이 분명해. 길을 따라갔어야 했는데 길을 벗어나 버렸어. 어떡하지..?

그러자 푸른 눈의 고양이가 반응하였다.

허수아비를 만났구나, 그렇다면 너희가 바로 이번에 들어온 아이들이겠군.

톰과 제리는 그제야 푸른 눈의 고양이를 똑바로 바라보게 되었다. 톰은 푸른 눈의 고양이가 낯설지가 않았다. 특히 그녀의 푸른 눈은 꼭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 오랜만이야... 톰

푸른 눈의 고양이가 중얼거렸다. 톰은 푸른 눈의 고양이가 낯설지 않은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는 사이 제리는 푸른 눈의 고양이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은 누구죠? 저희는 위대한 마법사 미야미야를 만나러 왔어요!

미야? 미야미야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톰은 푸른 눈을 기억해 냈다. 고양이의 푸른 눈이 낯설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예전에 좋아했던 고양이 미야의 푸른 눈과 쏙 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고양이는 미야와는 전혀 다르게 생겼다.

미야? 아닐 거야...

톰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푸른 눈의 고양이는 조용히 미소를 띠며 이야기했다.

한 번의 기회를 더 줄게. 수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저 길을 따라가면 너희가 만나려는 분을 만날 수 있을 거야. 
...나중에 또 봐.

이 말을 끝으로 푸른 눈의 고양이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톰은 푸른 눈의 고양이가 사라진 허공을 잠깐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톰은 그 자리에 잠시 넋이 나간 상태로 앉아있었다.

너무 익숙해.. 노을 너머 세계의 고양이 라면 서로 알 리가 없는데.. 게다가 이미 잘못된 선택을 해 위험해질 뻔한 우리를 이렇게 도와준 것도..

생각에 잠긴 톰에게 제리가 소리쳤다.

톰! 정신 차려! 우린 다시 그 길로 가야 해.

제리의 외침에 톰은 푸른 눈의 고양이에 대한 의문을 가득 품은 채로 미야미야를 만나기 위해 그녀가 알려준 방향의 길로 향했다.

보고 싶었어.
너에게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듣고 싶은 말도 참 많아.
하지만 아직 그러기엔 일러.
꼭 무사히 시련을 이겨내고 찾아와야 해.
그 여정에서 네가 원하는 것을 얻길 바라.
그가 가는 길에 행운이 함께하길...

푸른 눈의 고양이는 고요하게 읊조렸다. 마치 누군가가 듣길 바라는 듯이...

톰이 멀어지자 푸른 눈의 고양이를 덮고 있던 검은 얼룩이, 바람에 흩날리듯 사라졌다.

검은 얼룩이 사라진 고양이의 모습은 누군가와 닮아있었다.

아주 많이.

톰은 길을 걸으면서도 방금 마주친 고양이에 관한 생각을 놓지 못하였다. 그 모습이 마치 막 자다 깬 고양이처럼 넋이 나가 있었다. 제리는 어째서 톰이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리가 없어 톰에게 물었다.

톰, 무슨 일 있어? 아까부터 계속 멍하니 걷고만 있는 것 같은데... 혹시 아까 본 고양이 아는 애야?

그제야 톰은 정신을 차리고 제리에게 대답을 했다.

아.. 아니야... 그냥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아서 그랬던 것 같아.
그래?? 걱정돼서...
톰! 우리 정신 똑바로 차리고 빨리 이 길을 지나가자!!

제리가 톰을 보며 말했다.

그래그래! 아까 허수아비의 말을 명심했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캣닢밭으로 뛰어가버렸어..
미안해 제리.. 앞으로는 그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겠어!
미안해할 필요 없어 톰.. 나도 네가 없어진 뒤로 치즈 향을 맡고 뛰어갔는걸..
나도 운이 좋지 않았더라면 거대한 치즈 덩어리에 깔릴 뻔했어..

그때 낯선 소음을 감지한 톰이 말했다.

잠깐. 제리, 지금 무슨 소리 못 들었어?

제리는 잠시 말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희미한 '멍멍' 소리가 들려왔다.

오 맙소사, 강아지 무리가 이쪽으로 오는 것 같아!
저 무리는 왜 이쪽으로 오는 거지?
우리를 겁주려고 나타나는 건 아니겠지?
일단 피해!!!!!

그들은 잽싸게 바위 뒤로 몸을 피했다. 제리는 작은 바위틈에 몸을 숨겼고, 톰은 최대한 몸을 웅크렸다. 전에 슬링키에게 쫓겼던 이후로 개라면 본능적으로 피하게 된 것이다. 강아지 무리와 톰과 제리가 숨은 바위는 점점 가까워졌다. 언뜻 봐도 10마리가 훌쩍 넘어 보였다. 톰과 제리는 들킬까 봐 숨을 꾹 참았다. 다행히 강아지 무리는 톰과 제리를 못 보았는지 지나쳐갔다.

큰일 날뻔했어.
여기에 왜 강아지들이 있는 거지..?

톰은 갑작스러운 강아지들의 등장에 의구심을 품었다. 자신들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이곳은 전혀 강아지들이 있을 만한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톰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말을 꺼냈다.

저 강아지들도 우리처럼 노을 너머 세계를 찾아온 것이 아닐까? 그들을 따라가다 보면 뭔가 단서를 찾을지도 몰라!
하지만 따라가면.. 들켜서 잡히지 않을까..? 
이곳은 아마도 안전한 곳일 거야.. 우리를 누가 해치진 않을 거야. 난 그렇게 생각해. 괜찮을 거야!

제리가 말했다.

톰! 강아지들이 달려간 방향 저 멀리에 성이 보여!
저기에 미야미야가 있는 걸까?

제리의 말을 듣고 톰은 강아지가 달려간 곳을 보았다. 강아지들이 달려간 그 방향에는 뿌연 안개 너머로 큰 설산이 보였다. 아무리 멀리 있는 산이라 하더라도 크고 하얀 설산의 모습은 대단했기에 톰과 제리는 단번에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설산 아래를 살펴보니 제리의 말대로 성이 있었다. 크고 화려한 설산을 등지고 있는 그런 멋있는 성이었다. 하지만 제법 눈을 째려보아야 겨우 보일 정도로 멀리 있었다.

제리와 톰은 거대한 설산과 성을 바라보면 말했다.

정말 멀리 있네...!
저곳까지 가려면 서둘러야겠어.
아까처럼 유혹과 난관들이 많을 거야.
하지만 우리 꼭 저곳까지 함께 가자...!
그래 제리! 앞으로 다른 유혹이 생겨도 절대 따라가지 않겠어!
제리 너도 한눈팔지 말고 내 옆에 꼭 붙어 있어.
이런 곳에서 우리가 떨어지면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방금 캣닢밭에서 뒹굴던 고양이는 어디 갔지?
너나 내 옆에 꼭 붙어 있어! 이 제리님이 꼭 구해주겠다고~
으윽... 그건 미안... 그래 이제부턴 서로서로 조심하고 위기에 처하면 구해주자고!
우리 둘은 절대 떨어지지 말자!

톰과 제리는 만담을 나누며 다시 길을 나서기 시작했다.

알았어 톰!
어..? 근데 저 이정표는 뭐지?

쉬운 길, 어려운 길..?
뭐야 우리를 바보로 아는 거야?
당연히 쉬운 길이지!!!

제리는 신이 나서 톰을 이끌고 '쉬운 길'이라고 쓰여있는 방향을 향해 나아갔다.

쉬운 길이 있어서 다행이다~
우리 금방 저 성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

제리를 따라가면서도 톰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분명히 허수아비는 쉽지 않을 거라고 했던 것 같은데. 무언가가 잘못되고 있음을 느꼈지만, 둘은 이내 아무 생각 없이 열심히 걷기 시작했다.

이렇게 쉬운 길로 가도 되는 걸까?
아무래도 함정이 있을 것 같은데...

그 길을 계속 따라갔지만 몇 시간째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톰과 제리는 몹시 지쳐 말없이 성까지 걸어가고 있었다. 성까지 걸어가던 도중 제리는 신비한 사원을 발견했다.

톰! 저기 신비한 사원이 있어!
한번 들어가 보자!!
함부로 막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데...
잠시..!!

톰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제리는 재빠르게 사원으로 들어갔다.

우와! 톰! 빨리 들어와 봐!!
여기 신기한 물건들이 잔뜩 있어~
양탄자도 있고 수레도 있고 뭐가 되게 많네?

톰이 놀라워하며 말했다.

그러자 제리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톰을 보며 말했다.

이 물건들을 이용하면 도착지까지 빨리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여기가 쉬운 길이였나 봐!

카펫과 수레에는 얄밉게 생긴 광대가 그려져 있었다. 톰은 도구들을 보고 쉬운 길이 맞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불길한 그림들을 보고 불신을 놓을 수가 없었다.

제리, 수상하다고 생각 안 들어? 난 너무 수상하다고 생각하는데

제리는 톰을 보고 웃었다.

수상하긴 하지만 우리가 쉬운 길을 선택해서 이런 걸 얻게 된 거 아닐까? 일단은 이용해 보자고!
제리! 여기 노을 너머의 세계야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그러니까, 이걸 이용하면 빨리 미야미야님이 계신 곳으로 갈 수 있을 거야!

톰은 의심을 버릴 수 없었지만, 제리의 의견에 따르기로 하였다.

제리는 빨리 갈 수 있다는 이유로 마냥 신난 것처럼 보였다.

톰, 빨리 안 오고 뭐해! 얼른 이 수레를 타고 미야미야를 만나러 가자!

톰은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제리가 탄 수레에 올라탔다. 수레가 출발하려는 그 순간, 갑자기 구석에 있던 쓰레기 더미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제리는 소리에 호기심을 느꼈다.

어디서 뭐 움직이는 소리 나지 않았어? 분명 누가 우리에게 신호를 주는 것일 거야!

톰은 제리의 쓸데없는 호기심을 이제는 그러려니 하며 수레 안에서 쓰레기 더미로 가는 제리를 바라보았다. 제리는 쓰레기 더미에서 낡고 헤진 양탄자 하나를 발견했다.

뭐야 진짜 버려진 양탄자였잖아... 난 또 힌트인 줄 알았네...

양탄자에 실망한 제리가 뒤를 돌아서자, 다시 쓰레기 더미에서 소리가 들렸다.

어라? 분명 낡은 양탄자밖에 없었는데, 그럼 양탄자가 움직이는 것일까?

다시 쓰레기 더미를 보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양탄자만 덩그러니 있었다. 그냥 양탄자를 두고 가기에는 찝찝함이 느껴져 제리는 양탄자를 한번 들고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톰, 이리 와서 양탄자 좀 들어줘.
왜, 그 양탄자가 뭔데?

톰이 다가와서 양탄자를 집어 들었다.

어라? 이 양탄자...
왜? 이 양탄자가 뭔지 알아?

톰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무 촌스러워..

제리는 한심하다는 듯이 톰을 쳐다보았다.

지금 농담 따먹기나 할 때야? 그만하고 양탄자 반대쪽 잘 좀 들어줘봐.

톰은 제리의 반대편으로 가서 양탄자를 들어 올렸다. 그런데 갑자기 제리가 양탄자를 위로 높이 들기 시작했다. 그것도 제리의 키보다 몇 배나 높게 말이다. 톰은 제리가 장난치는 줄 알았다.

뭐야 제리! 장난치지 말고, 이거 어떻게 할까?

제리가 잠시 숨을 멈추더니 말했다.

나 이거 손도 대지 않고 있어...
톰, 이거 혼자 떠오르는 마법 양탄자인가 봐!!

마법 양탄자? 나 그거 알라딘 영화에서 본 적 있어!

알라딘은 두 자매가 가장 좋아했던 디즈니 영화였다. 가족들은 거실에 모여서 알라딘 영화를 자주 보았다. 그 덕분에 톰도 자연스럽게 줄거리를 외우게 되었다. 톰은 자신도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자유롭게 세상을 날아다니고 생각하곤 했었다.

우리 이걸 타고 가자! 이건 혼자 날 수 있는 마법 양탄자야!
이걸 타고 가면 성에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을 거야.

톰이 양탄자 위로 점프하며 말했다.

와... 신기하다!
톰, 나 좀 올려줘!

제리가 떠 있는 양탄자 위에 올라탄 톰을 보며 말하자, 신기하게도 양탄자가 스르륵 내려와 마치 올라오라는 듯 한쪽 모서리를 바닥에 대었다. 제리가 모서리를 밟고 올라가자, 양탄자가 모서리를 높이 들어 올려 제리가 양탄자 가운데로 데굴데굴 구르게 했다.

으악!

갑자기 구르게 된 제리가 놀라서 소리쳤다.

푸흐흡!

톰은 제리를 놀리는 양탄자가 웃겨서 웃음이 터졌다.

톰, 웃지 마!

양탄자 위에서 일어난 제리가 씩씩대며 말했다.

그렇게 둘은 마법 양탄자를 타고 다시 성으로 출발했다. 설산에 도착해 성까지 가는데 얼마 안 남았을 무렵, 너무 추운 날씨 때문에 마법 양탄자가 굳어버렸다.

아니 도대체 양탄자를 뭘로 만들었길래 춥다고 굳어버리는 거지?
우리도 걸어 다니는데 양탄자가 굳는다니 말이 돼??
참, 나 됐어! 걸어서 가자!

톰과 제리는 투덜대면서 양탄자를 들고 설산 어딘가를 걷고 있었다. 온통 하얗게 보일 뿐, 도저히 방향을 알 수 없었기에 발이 푹푹 눈 속으로 빠지는 것만을 느끼며 걸어 나가기만 하였다.

톰 저길 봐! 동굴이 있어!
한번 들어가 보자! 뭔가 단서가 있을 거야.

제리가 동굴을 발견했다. 얼어 죽을듯한 추위였는데 마침 몸을 녹일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었다. 톰과 제리는 재빨리 동굴로 들어가 몸과 양탄자를 녹였다.

그런데 알 수 없는 비명이 동굴 깊은 곳으로부터 들려왔다.

이... 이게 무슨 소리지? 뭔가 엄청 무서운데...

톰과 제리는 두려워하면서도 비명의 정체가 궁금했다. 그들은 동굴의 더 깊은 곳을 향해 가보기로 했다. 그들이 더 깊이 들어갈수록 오히려 더 밝아졌다. 그 끝에는 누군가 촛불을 켜놓고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거침없던 여태까지의 모습과 다르게 주춤거리던 제리는 톰의 머리에 올라탔다. 톰은 공포감을 없애기 위하여 장난스러운 말을 꺼냈다.

용감한 제리~ 설마 겁먹은 건 아니지~?
나...나를 뭘로 보고! 그냥 좀 ㅊ... 추워서 그런 거야~
하나도 안 무섭다고!!

서로 웃으면서 이야기했지만, 아른거리는 주황색 불빛에 따라 벽에 생기는 거대한 그들의 그림자를 볼 때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한없이 작은 존재인가를 체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와 동시에 톰의 공포감은 커져만 갔다.

제... 제리... 우리 그냥 돌아갈까...?
앞으로 가면 안 좋을 거 같은데..
이것도 함정이 아닐까...?

톰의 얼굴은 겁에 질려 점점 하얗게 변해만 갔다. 한편 제리는 마음을 굳게 먹고 말했다.

아냐, 톰! 어쩌면 이것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련일지 몰라!
이 공포를 극복해야 해!
빨리 가보자!
친구를 찾아야지!

톰의 상태를 알아채지 못한 제리는 톰을 내버려 둔 채 더욱 빨리 걸었다.

제리...!! 같이 가!!

톰은 멀어지는 거리를 좁히려 종종걸음으로 뒤쫓았다. 그때, 톰보다 앞서 있던 제리가 무언가 발견한 듯 소리쳤다.

톰!!! 얼른 와서 이것 좀 봐!!!
여기 이상한 게 있어!

제리가 보고 있던 바닥에는 두 개의 팔찌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두 개의 팔찌는 하나의 끈으로 이어져 있었다.

톰, 이거 우리한테 주는 걸까?
그건 아닌 것 같아. 
이건... 두 마리의 동물이 서로를 이으려 사용했던 팔찌인 것 같은데...

톰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고, 제리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끊어진 두 개의 팔찌를 보고 직감적으로 그 의미를 알아챘기 때문이다. 앞서 들어온 두 마리의 동물은, 서로 갈라서는 걸 택했다.

하하하 겁먹지 마 톰.
우린 절대 저렇게 되지 않을 거야! 
우린 서로 의지하는 친구인 걸 잊었어?
그래 우린 서로를 버리지 않을 거야.
...

톰과 제리는 서로를 진심으로 믿는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끊어진 팔찌 앞에서 그들의 의식 속에는 서로를 버리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조금씩 생겨났다. 마음속에서 조금씩 올라오는 불안감을 정리하려는 듯, 톰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제리, 만약에... 아주 만약에, 우리가 떨어져야만 할 때가 온다면, 그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지..?

톰의 말을 들은 제리의 눈이 잠시 흔들리는 듯싶었지만, 이윽고 머릿속을 정리한 제리는 톰에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 톰. 그럴 일은 없어. 설령 우리가 떨어져야만 할 때가 오더라도, 우리는 곧 서로를 찾게 될 거야.
우리가 잠시 멀어진 적은 있었지만, 결국 이렇게 만나 노을 너머의 세계로 왔잖아?

그제야 톰은 걱정이 풀렸는지, 긴장이 풀린 표정으로 제리를 향해 밝게 웃어 보였다.

몸을 다 녹였으면 다시 출발해 볼까?
아 참, 이 팔찌는 챙겨가자.
빨리 가면 이 둘 중 하나를 마주칠지 몰라.
그래! 우리도 어서 가자.

톰과 제리는 서로를 버리게 될까 봐 무서웠지만, 내색하지 않고 성을 향해 출발했다. 둘의 우정은 누구보다도 견고했기에, 그들은 또 발걸음을 내디딘다. 얼마 가지도 못한 채 누군가가 그들을 붙잡았다. 깜짝 놀라서 뒤돈 톰과 제리 앞에 꼬질꼬질한 쥐가 나타났다.

어디 가? 나 좀 데려가 주면 안 될까?
난 로건이라고 해... 제발 나도 데려가 주라...

시궁창 쥐 로건이었다. 동족을 만난 제리는 신이 났지만, 이미 톰은 지친 상태였다.

제리. 꼭 이 친구와 함께 해야 하는 걸까?
일단 이 친구도 많이 힘들어 보이니 사정을 한번 들어보자...

안녕 로건. 
너는 어쩌다 여기에 오게 된 건지 물어봐도 될까...?

제리는 자신들보다 앞서 노을 너머의 세계에 온 쥐라면 무엇인가를 알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실 나는 이 동굴에서 길을 잃었어...
시궁창 생활을 오래 한 탓일까 아무도 더러운 나와 함께해주지 않았고, 아직까지 이 동굴에서 헤매고 있어...
부탁이야... 나를 제발 데려가 줘...

로건의 사정이 딱하게 느껴진 제리는 마음이 약해져 톰을 설득했다.

톰! 우리 동굴 밖까지만 로건과 함께 하는 게 어때? 응?!
동굴에서 길을 잃었지만, 우리보다 먼저 이 세계에 도착했으니 정보가 많을 거야!
둘이서 헤쳐나가느라 좀 힘들었잖아. 좋은 동료가 될지 모른다고!! 그렇지 로건?

로건은 화색을 띄우며 말했다.

맞아 내가 동굴에서 길은 잃었지만 동굴을 지나간 여러 동물들에 대해 알고 있어.
분명 도움이 될 거야. 날 데려가 줘..

그러자 제리가 톰의 대답을 재촉하는 듯 쳐다봤다.

...알았어 제리.

톰은 내키지 않았지만 자신을 위해 따라온 제리의 생각을 쉽게 반대할 수 없었다.

...!!! 정말 고마워 얘들아!!!! 이 은혜 꼭 잊지 않을게.

이렇게 톰과 제리는 시궁창 쥐 로건과 함께 길을 나섰다.

그나저나 제리, 네가 따라가던 검은 그림자는 봤어?
앗! 팔찌에 정신이 팔려 놓치고 말았네..
엄청 거대한 그림자였는데 누굴까?
팔찌의 주인이 아닐까..?
그렇다면 팔찌의 주인들이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소린데...
앗 혹시 그 팔찌 빨간색과 파란색 팔찌가 서로 이어진 거니?

로건의 말에 제리가 눈을 반짝였다.

설마 너 그 팔찌의 주인을 알아?
응, 너희를 만나기 얼마 전에 그 아이들을 만났어.
물론 나를 데려가 주진 않았지만...
내가 만났을 땐 팔찌를 끼고 있었어.
그래?
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팔찌를 나누어 가진 그 둘은 고양이였어.
한 마리는 검은 무늬였고 다른 한 마리는 하얗고 아름다운 외모였는데... 아마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던 것 같아.
그 아이들도 우리 셋처럼 쉬운 길을 선택했을 거야. 
너희는 양탄자를 타고 왔지만 그들은 바깥세상에서 인간들이 타는 네모 상자와 비슷한 물체를 타고 왔지..
내가 함께 다니자고 하자 네모 상자에 자리가 없다며 먼저 갔었어. 내가 아는 것은 여기까지야... 

성 앞에 도착했을 때 로건은 작별인사를 했다.

고마워 얘들아...! 나는 이만 가볼게!
이건 너희에게 주는 선물이야
곤경에 처했을 때 이 호루라기를 불어봐.

호루라기? 알았어!
잘 가 로건~!
'웬 호루라기지...?'

호루라기에 대한 생각도 잠시 동굴을 탈출한 그들의 눈앞엔 성이 펼쳐졌다.

어? 저기봐 톰!!!
우리가 드디어 성에 도착했어!!!

제리는 기쁨 가득한 목소리로 외치며 자신이 바라보는 곳을 가리켰다. 그들의 눈앞에는 정말로 성이 보였고, 그 주위로 아름다운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길가에는 제리와 톰이 가장 좋아하는 꽃부터 난생처음 보는 이국적인 꽃까지 수많은 종류의 꽃들이 만개하고 있었다. 마치 비단으로 수놓은 듯한 산뜻한 색감이 보기만 해도 상쾌하게 만들었고, 가로수의 나무들은 금빛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참을 수 없는 충동에 이끌린 제리는 길가에 떨어진 열매 하나를 주워서 입안에 넣어보았다. 달콤한 과즙이 제리의 혀를 감싸며 파스텔 톤을 펼쳤고, 그 향은 온갖 과일을 합쳐놓은 듯한 상큼한 내음을 풍겼다.

톰, 먹어봐! 완전 맛있어!

톰도 길가에 떨어진 그 과일을 삼켜보았다. 톰에게도 그 과일은 환상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깨닫지 못했다. 이 모든 게 함정으로 이끄는 장치라는 것을.

하지만 몰랐을 수밖에 없던 것이 실제로 그 길은 너무 잔잔하게 아름다웠다. 은은한 조명들이 톰과 제리의 길을 밝혔다. 그렇게 그들은 나란히 걸어갔다.

'아름다운 풍경이야...'

둘 다 같은 생각을 하며 나아갔다. 그렇게 그들은 대문 앞까지 이르렀다.

아름다운 풍경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성의 대문은 어마어마하게 컸다. 톰과 제리의 힘만으로는 대문을 열 수 없었다.

톰, 이 큰 문을 어떻게 열고 들어가지?
음.. 문을 두드리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지 않을까?

톰은 쾅, 쾅! 하고 문을 세게 두드렸다. 문을 두드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커다란 문이 스스로 열렸다.

톰, 대단해! 얼른 들어가자!

제리는 신이 나서 앞장서 성안으로 들어갔다. 뒤따라 들어가는 톰은, 순간 불안한 마음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지만, 어느새 문은 굳게 닫혀 사라지고, 끝없이 높은 성벽만 보일 뿐이었다. 톰은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막힌 것 같아 못내 불안했다. 톰은 제리를 잠시 불러 세웠다.

제리.....문이 사라졌어. 우리 돌아갈 수 있는 걸까?

제리도 그 말을 듣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찔하리만큼 높은 성벽에 문은 보이지 않았다. 제리도 살짝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톰을 격려했다.

괜찮아 톰. 우리의 여정이 끝나면 자연스레 돌아가는 법도 알게 될 거야.
일단은 우리의 운명이 우리를 어디까지 이끄나 지켜보자고!

톰은 앞서가는 제리를 따라 기나긴 복도를 걸었다. 그때 갑자기 슉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붕 떴다.

으악!

그물 덫에 걸려 천장에 매달리게 된 것이다.

웬 놈이냐?

복도 사이사이에서 벽지와 똑같은 무늬의 갑옷으로 똘똘 무장한 카드 병사들이 나타났다.

톰과 제리는 공중에서 매우 당황해, 그물 덫에 걸린 채 호소했다.

왜 우릴 덫에 가둔 거죠? 우리는 미야미야님을 만나 소원을 이루고 싶어서 이곳에 왔어요!

카드 병사들은 미야미야라는 이름을 듣곤 그물 덫에 걸린 톰과 제리를 그들의 왕 조오커에게 데려갔다. 조오커는 톰과 제리가 이 성안에 들어온 이유를 듣고 비웃으며 말했다.

미야미야님을 만나고자 하는데 이곳에 왔다..? 허허, 양심 없는 자들이구나.
너흰 양탄자를 타고 온 게 틀림없다. 그렇지?
그... 그걸 어떻게 알았죠?

제리가 깜짝 놀라 말했다.

너희처럼 쉬운 길로만 가고자 하는 이들이 꼭 양탄자를 타고 이 성에 도착했지.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단 걸 그대들은 알아야 하네.
그걸 깊이 깨닫고 역경을 이겨내며 바라는 것을 얻고자 노력할 때야말로 그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야.

다만. 그 양탄자를 타고 요행을 바라며 다니던 놈 중에 역경을 이길만한 놈들은 없었어.
다 자신이 현재 가진 것들에 만족하지 못하고 노력하지 않는 그런 놈들이었지.
너희가 역경을 이겨낼 수 있을진 모르겠구나.

그래도 미야미야님을 뵙고 싶으냐?

톰과 제리는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네! 저희는 미야미야님을 꼭 만나야 해요!
내 부탁을 하나 들어주면 내가 나의 카드 병사들을 시켜 너희를 미야미야님에게 데려다주마.
이 역경을 이겨내고 스스로를 증명한다면 너희를 인정하마.

톰과 제리는 내심 기뻐하며 얼른 되물었다.

좋아요. 어떤 부탁이죠?

검은 마녀를 물리쳐라. 그 마녀는 우리 중 검은 카드 병정을 모조리 잡아가고 있어.

제리는 깜짝 놀라며 톰을 쳐다보며 말했다.

검은 마녀? 아까 허수아비가 절대 만나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맞아..어떡하지..? 할 수 없다고 할까...?
혹시라도 할 수 없다는 소리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검은 마녀를 물리치지 않으면 마녀가 데려간 카드 병정들 대신
너희를 검은 카드로 만들고 말 것이니까.
네..? 아니 그걸 말이라고...읍!

톰이 빠르게 제리의 입을 막고 귓속말을 했다.

제리 일단 여기선 복종하는 척하는 게 좋겠어.
검은 마녀도 위험해 보이지만 저 조오커라는 왕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아.

톰은 곧장 조오커에게 대답했다.

네 좋아요! 저희가 검은 마녀를 무찌르겠습니다!
톰..! 어쩌려고..!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방법이 없잖아...! 
우린 정보가 너무 부족해.
만약 이 역경도 헤쳐나간다면 오히려 더 빠르게 미야미야님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방금 그 쥐가 준 호루라기도 있잖아.
우린 분명 이겨낼 수 있을 거야!
ㄴ...네 저희가 검은 마녀를 무찔러 보겠습니다. 저희를 풀어주세요.

제리가 쥐구멍 들어가듯 작은 소리로 말했다. 둘은 무릎을 꿇고 복종을 표했다.

조오커는 흡족한 듯 미소를 띄며 말했다.

패기 하나는 마음에 드는구나! 너희를 검은 마녀에게로 보내주지. 건투를 빈다.

딱! 조오커가 손가락을 튕겼다. 번쩍! 퍼지는 빛은 저절로 눈을 감게 만들었다.

악! 눈부셔!

눈을 뜨니 조오커는 온데간데없고 톰과 제리는 어둡고 낯선 곳에 도착해 있었다.

그러자 정신을 차리고 다시 앞을 보니 검은 마녀가 눈앞에 있었다.

이... 이게 무슨...?

톰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크게 당황하여 얼어붙었다. 제리는 검은 마녀의 사악하고 잔인한 아우라에 그만 다른 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제... 제리?
웬 놈이냐?

깊고 어두운, 악몽 속에서나 어렴풋이 들릴 수 있는 그런 사악한 목소리가 그 장소에 널리 퍼졌다.

우.. 우리는 싸우러 온 게 아닙니다!
그저 카드 병사들을 어찌했는지 조오커왕이 알아오라고 심부름을 받은 것뿐이에요!
네 맞아요! 그 말을 듣고 정신을 차려보니 여기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검은 마녀는 톰과 제리를 유심히 쳐다보다 카드 왕국의 백성과는 다르게 생겼다는 것을 깨닫고 눈을 찌푸렸다.

여기는 나의 얼음성.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

악몽이다! 그렇다. 그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 목소리며, 그 모습! 그 주변은 마치 미처 닫지 못한 방문의 한 구석진 곳으로 새어 나오는 빛과 같은 어둠으로 잠식되어가고 있었다. 톰은 마녀의 어둠이 자신마저 집어삼킬까 봐 두려웠다. 지금은 생각이 필요했다.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어떻게 간신히 목숨이라도 보전할 수 있을까?

그때였다. 뒤에서 친숙한 음성이 톰의 뒤통수를 간지럽혔다. 지금 톰에게 있어서 유일한 희망, 제리의 목소리였다.

쉿! 빨리 여기로 와봐!

톰은 재빠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는 작은 구덩이가 있었다.

제리는 이미 그 안에 들어가 있었고 톰은 서둘러 그 구덩이 속으로 들어갔다.

여기 구멍이 있어 여길 통하면 저 마녀의 눈을 피해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그럴듯한데? 서두르자.

톰과 제리는 서둘러 얼음 동굴을 나아가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둘은 검은 마녀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검은 마녀는 톰과 제리를 찾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들어가도 이곳으로 들어갔구나...
이곳은 내가 너희같이 겁도 없이 이 몸의 성에 찾아온 녀석들을 벌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동굴이지.
지금이라도 나온다면 목숨만은 무사할 거다.

마녀의 목소리가 동굴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그 목소리에 묻어나는 악독함에 두 친구는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제리? 좋은 생각 있어?
지금 생각 중이야...

침착한 제리의 목소리는 당장이라도 몸을 파괴할 듯한 공포에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으나, 그마저도 겁을 감추기엔 역부족이었다.

제리는 생각 중이었다. 톰이 제리를 만난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하고 신중하게 머리를 굴렸다. 제리는 동굴의 구조와 벽면을 유심히 살피면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니티움 루시스.

사악한 마녀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동굴안에 붉은 빛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너희들이 저항할 수 있는 기회는 지금이 마지막이다.

그때, 제리가 갑자기 앞으로 나갔다.

톰은 화들짝 놀라 제리의 꼬리를 잡았다.

대체 뭐하는 짓이야 제리?
걱정 마. 다 생각이 있으니까.

일촉즉발의 순간 제리는 작을 돌과 지푸라기들을 긁어모아 동굴 구석진 곳에 동그란 형태를 만들기 시작했다.

톰! 너도 어서 아무거나 쌓을만한 걸 들고 와!

톰은 제리가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점점 가까워지는 마녀의 발소리에 급하게 주위에 널브러진 부스러기들을 들고 왔다. 제리는 빠르게 부스러기를 쌓아 마치 누군가가 몸을 웅크린 후 그곳에 숨어있는 것 같은 모형을 만들었다. 그리곤 톰을 데리고 동굴 벽면 사이로 숨었다.

톰... 잘 들어. 저걸로 잠시 시간을 끄는 거야.
마녀가 저쪽으로 가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다시 위로 올라가는 거야...!

제리가 작은 목소리로 빠르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톰과 제리는 마녀가 다가오는 것을 숨소리도 죽여가며 기다렸다.

마녀가 그들을 눈치채지 못하고 제리가 만들어 둔 모형에 가까워지자 톰과 제리는 눈을 질끈 감고 최고 속도로 도망쳤다. 마녀는 그제서야 자신이 속았단 것을 깨닫고 악에 받쳐 그들에게 주문을 난사했다.

감히... 감히....!!!
쥐와 고양이 따위가 내게!!!
가만두지 않겠어...!

톰과 제리가 구멍 밖으로 나가기 직전 그만 마녀의 공격이 제리의 다리에 스쳤다.

으악!
제리! 안돼! 

톰은 쓰러지려는 제리를 잡고 간신히 구멍을 탈출했다. 얼음 동굴은 마녀가 난사한 주문에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톰은 제리를 들쳐매고 빠르게 성을 벗어났다.

헉... 헉... 어떻게 해야 하지...? 
제리...! 괜찮아?
응...톰...! 다행히 스쳐서 그런가!

톰은 제리를 내려준 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대화했다.

톰! 아까 로건이 준 호루라기 들고 있지? 우선 우리끼리 여기서 더 할 수 있는 게 없어...
로건이 우릴 도와줄 수도 있어! 호루라기를 불어보자.

그들은 마지막 희망으로 호루라기를 불렀다. 호루라기의 맑고 경쾌한 소리에 톰과 제리는 자신들을 도와 줄 누군가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