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겨울 밖은 이미 눈이 많이 쌓였다. 따뜻한 방바닥, 포근한 쿠션, 반짝거리는 불빛.
거실 한켠에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거리고 있었고, 톰은 호기심에 트리에 걸린 장식을 툭툭 친다. 트리에 걸린 장식이 흔들렸고, 톰은 눈을 반짝이며 흔들리는 장식을 바라본다. 톰의 집사들은 그런 톰을 따뜻한 눈빛으로 보며 웃음을 짓는다. 그러다 톰을 안아 들고 소파에 앉아 살며시 쓰다듬는다. 따뜻한 온도, 그리고 부드러운 손길에 톰은 슬며시 존다. 너무나 편안하고 평화로웠다.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간 듯 보였다. 아니 평소보다 더욱 가득 차 보인다.
톰 앞으로 놓이는 따뜻한 우유. 이 우유는 톰에게나 집사에게나 특별하다. 자매 집사들이 고생했을 톰을 위해 서로의 용돈을 모아 산 고양이용 우유이기 때문이다. 톰의 일탈 전에는 우유는 고사하고 물조차도 깜빡 잊어먹던 집사였지만, 이제는 톰을 위해 자신의 용돈도 덥석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집사들의 변화가 톰에게는 꽤 만족스러웠다.
톰은 연기가 몽글몽글 올라가다 종래엔 사라지는 광경을 관찰하며 우유가 식기를 기다렸다. 기분 좋은 고소한 향기가 톰의 콧속으로 들어왔다. 연기가 사라지듯 톰의 근심 걱정도 없어지는 것 같았다. 톰은 무언가 후련한 표정으로 조금 식은 우유에 입을 댔다.
음.. 오랜만에 마시니까 역시 맛있어! 역시 집 나가면 고양이 고생이라니까 집이 최고야..
우유를 음미하면서 톰은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우유를 음미하는 톰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참치캔도 땡겼다.
집사 그 참치캔은.. 없나..?
톰은 집안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아마도 참치캔은 다 떨어진 모양이었다. 조금은 아쉬웠지만 따뜻한 우유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긴 여정을 다녀오는 동안 톰은 제대로 된 식사를 즐기지 못하였다. 집에서 편하게 식사를 해결할 때에는 일상이 마냥 지루하기만 하였다. 하지만 바깥세상을 구경하고 여러 친구를 만나고 오니 이런 일상도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가끔 이런 일탈은 괜찮을지도..?
톰은 따뜻한 우유를 즐기며 몸이 노곤해지는 것을 즐기고 있다.
집사는 일터에 휴가를 냈는지 부쩍 톰이랑 있는 시간이 늘었다. 전에는 자주 들을 수 없던 톰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도 자주 들려왔고, 톰이 그루밍하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 정도로 빗질도 자주 해주었다.
뭔가 다시 옛날로 돌아간 것 같아 좋아...
창밖으로 보이는 일출. 어느새 환한 햇빛이 어두운 골목길부터 따뜻한 우리 집까지 비추려 하고 있다.
조금만 지나면 제리도 잠에서 깰 터였다. 사실 겨울이 되고 제리가 밖에서 먹이를 구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톰이 선심을 썼던 것이었다. 오늘은 파티를 하는 날이다. 톰은 최대한 멋지게, 이쁘게 보이기 위해 일찍 일어나 세수를 하는 중이었다.
문득 집을 나가기 전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던 집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세수했을 때가 떠오른다. 톰은 그 때의 기억이 조금씩 떠오르려 하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제는 그때와 달라..!
그나저나 제리는 뭐하고 있지?
그때 저 멀리서 제리가 총총걸음으로 달려온다. 톰을 발견한 제리는 환하게 웃으며 달려온다. 제리도 파티때문에 신경을 쓴 것인지 예쁜 넥타이를 메고 있었다.
제리 오늘 좀 귀여운데? 신경 좀 썼나보네~~
오늘따라 제리가 더욱 귀엽게 느껴진다. 톰은 이러한 제리의 모습이 오랜만이었기에 계속해서 제리를 쳐다보았다.
톰! 뭐해??
우리 오늘 파티하는 날인 거 알지??
톰은 당연하다는 듯이 제리에게 말했다.
당연히 알지~
오늘 뭐 하고 놀까??
제리가 씩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내기하는 건 어때?
제리가 톰에게 내기를 제안했다. 제리와 톰은 옛날부터 수많은 내기를 즐겨했었다.
옛날에 했던 술래잡기를 하는 거야, 이긴 사람 소원 들어주기!
좋아, 하지만 예전처럼 봐주지 않을 거야!
톰과 제리의 술래잡기의 방식은 이러했다. 술래는 톰, 도망가는 사람은 제리였다.
항상 톰이 봐주기 때문에 제리가 이기곤 했지만 이번엔 제대로 할 마음인 것 같다.
먼저 도망가 30초 동안 숫자 센다~
제리가 도망갔다. 톰이 제리를 쫓으려 한다.
흠.. 이 기분 되게 오랜만이네..
톰은 집을 나가는 일탈을 저질렀을 때의 자신이 떠올랐다. 슬퍼하던 자신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내기를 제안했던 제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의 제리는 참 고마웠지
제리는 톰에게 정말 소중한 존재임을 톰은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그때와 다르게 그저 즐기기 위한 내기를 하는 지금의 상황이 그리웠었던 것 같다.
톰은 예전에는 당연했던 이 놀이가 오늘따라 왠지 서글프다. 힘든 일을 겪어서일까. 당연했던 일상이 당연하지 않게 느껴진다.
그동안 이런 일상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어.
앞으로는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생각할 거야!
톰은 달리면서 생각했다.
톰! 뭐해? 안 잡을 거야?!
제리가 소파 아래에서 소리쳤다.
톰은 소파 앞에 엎드려 소파 밑으로 앞발을 휘저었다. 물론 고양이인 톰은 소파 밑으로 충분히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제리와의 술래잡기를 더 오래 즐기고 싶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제리는 소파 아래에서 웃긴 표정을 지으며 톰을 약 올렸다.
그러자 톰도 제리를 따라 소파 밑으로 들어갔다.
제리는 톰을 피해 소파 아래에서 이리저리 도망쳤다. 그런 제리를 따라 톰도 소파 아래를 열심히 휘저었다. 제리는 소파 끝에 도달하자 이제 도망칠 곳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거실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제리가 소파와 거실의 경계에 도달했을 때 제리를 잡아 올리는 손길이 느껴졌다.
아유 먼지!
제리를 붙잡은 손은 집사의 손이었다. 집사의 나머지 손은 제리를 쫓아 소파 아래에서 나오던 톰을 붙잡았다.
둘 다 먼지투성이야!
순간 톰과 제리는 눈이 마주쳤고, 흐뭇하게 웃는다. 톰이 입을 연다.
맞아.. 나는 이런 게 그리웠던 거 같아..
집사의 애정 섞인 꾸중마저도 너무 좋아 이젠!
나를 사랑해 줄 집사를 찾아 그 고생을 했다니...
그런 집사가 바로 옆에 있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말이야..
그러게 톰~ 우리는 이번 사건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었다 정말~
집사의 외침에 둘의 훈훈한 대화는 끝이 났다.
안 되겠다, 너희 둘 다 오늘 목욕이야!
톰, 너도 이리 와!
집사는 제리와 톰을 번쩍 안아 욕실로 데려갔다. 욕조에는 따듯한 물이 받아져 있었다. 톰이 좋아하는 오리 인형도 둥둥 떠다녔다. 집사는 톰과 제리를 내려놓고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금방 올게.
집사는 문을 닫고 나갔다. 톰과 제리는 서로 눈을 마주치고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한다는 듯이 씩 웃으며 집사를 놀래킬 준비를 했다.
제리. 넌 어디 숨을래?
난 세면대 아래에 숨을 생각이야.
톰이 소근거리면서 제리에게 묻자 제리는 걱정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제리에게 물었다.
톰. 숨게 되면 집사가 너무 놀라지 않을까?
제리의 물음에 톰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다시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하나의 이벤트라고 생각하자. 제리
톰의 말에 그제야 제리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영락없이 영혼의 한 쌍이었다.
그래. 그럼 나는 천장에 붙어있을게.
집사가 오면 떨어져야겠어. 크크크.
제리의 말에 톰은 엄지를 들면서 말했다.
좋은 생각이야!
그렇게 제리는 세면대 아래로, 톰은 천장으로 올라가 각자 주인을 놀래킬 준비를 했다.
그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주인을 놀래킬 준비를 마치기 무섭게 주인이 욕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욕실 문을 열고 들어온 주인은 톰과 제리가 없어져 당황해한다.
허나 주인이 당황한 표정을 지을 틈도 없이 톰은 주인을 향해 천장에서 떨어졌고, 제리는 톰 때문에 넘어진 주인을 향해 물을 뿌렸다. 톰과 제리의 깜짝 이벤트에 당한 주인은 톰과 제리를 향해 소리쳤다.
이 녀석들!! 나에게 도발했다 이 말이지~?? 가만 안둬~~
이리 와!!
톰과 제리는 주인이 다시 일어나서 그들에게 복수하기 전에 욕실에서 도망쳤다.
이를 놓칠새랴 주인이 일어나서 그들을 뒤쫓았다. 그들은 집안을 헤집으며 주인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도망다녔다.
그들은 요리조리 잘 도망다녔지만 뛰는 동물 위에 나는 사람이었다.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은 곧 주인에게 잡히고 말았다.
잡았다 요 녀석들~ 나를 놀래킨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겠지~??
집사는 빠르게 욕실 문을 닫고 톰과 제리를 잡아 욕조 안에 넣었다.
톰. 이번이 마지막이야.
내가 여기서 지켜보고 있을 거야.
으악!! 잡혔다! 물 싫은데...
넌 왜 안 와?
제리는 모른 척하고 있었지만, 집사의 말에 하는 수 없이 욕조 안에 들어갔다.
나도 목욕은 싫어~!
녀석들. 어차피 목욕할 거면서 왜 반항하는 거야.
평소 목욕이라고 하면 질색하던 톰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일탈이라는 것을 해보며 목욕보다 더 힘든일들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무섭고 힘든일을 겪으면서 톰의 싫음 순위는 많이 변해온 것 같다. 물은 톰을 더이상 무섭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 톰에게 목욕은 하나의 쉬는 시간이 된 것만 같았다. 아직 물은 싫지만 집사에게서 느껴지는 따뜻한 손길은 톰을 편하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