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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

시곗바늘이 오후 9시를 가리킴과 동시에 해가 완전히 저물었다. 공기는 더욱더 싸늘하고 차가워졌다. 붉은색이 넘실대던 세상은 검게 물들었다. 붉은 노을빛을 따라가면 노을 너머의 세계에 도착할 수 있다고 믿던 톰과 제리의 발걸음도 점차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바람에 스치는 나뭇가지 소리도 이제는 들리지 않는다. 톰과 제리는 다시 길가를 바라보았다. 출발할 때는 희망찬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기분이 드는 길이었지만 지금은 끝이 보이지 않는 미로 같았다.

가로등의 불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하였고, 거리의 소음도 점차 줄어들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차 있던 놀이터엔 적막만이 맴돌았다. 톰과 제리는 적막한 거리를 아무런 대화도 없이 계속 걸었다. 그들은 어두워진 길거리의 모습에는 관심이 없는 듯, 계속해서 발걸음만 옮길 뿐이었다. 슬슬 발이 아프다는 생각이 들 때쯤, 제리가 톰에게 물었다.

톰, 근데 노을 너머 세계에 대해서 얘기 좀 해봐.
그 마법사는 어떻게 생겼어? 어떤 방식으로 소원을 이뤄주는거지? 시간을 되돌리는 것도 가능할까?
이제 얼마나 더 걸으면 될까? 우리 그래도 꽤나 걸어온 것 같은데?
얼른 거기로 가서 배부르게 먹고 뻗어서 쉬고 싶어.
너무 기대되는걸!

제리는 신이 난 목소리로 톰에게 말했다. 그러나 톰은 그 무엇에도 제리에게 확답을 줄 수 없었다. 톰 자신도 노을 너머 세계에 대하여 확신할 수 있는 부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아가려던 톰 앞에 벽이 떡하니 들어선 느낌이었다.

톰은 잠깐 멈춰 서서 제리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다 문득 자신 때문에 괜히 제리만 힘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복잡한 심정이 교차하였다. 심지어 본인조차 점차 힘이 빠지는 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래도 톰은 제리에게 실망감을 줄 수 없었기에 아무렇지 않은 척 살짝 웃으며 말했다.

노을 너머의 세계에는 분명 우리가 바라던 것들이 모두 다 있을 거야.
나만 바라보고 아껴주는 주인님도 있을거고, 우리가 하루 종일 먹고도 남을만한 참치캔이랑 치즈도 있을거고!
아마 조금만 더 가면 보일 거야.
꼭 찾을 수 있어!
우리 같이 힘내서 찾아보자고!

길거리를 지나가던 톰과 제리 앞에 이번에는 기묘한 풍채의 아주머니가 나타났다.

기척도 없이 나타난 것이 유령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 아주머니의 손에는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등 온갖 보석이 박혀 있는 장화를 신고 있었다. 밤인데 선글라스를 끼고, 입술은 매우 붉었으며, 머리는 온갖 손질을 받은 듯 풍성하며 목에는 호피 무늬가 잔뜩 박힌 강렬한 털을 두르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가만히 톰을 바라보더니,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톰에게 말했다.

그 복주머니, 내가 갖고 싶어. 그거, 내 장화랑 좀 바꿔야겠다.

톰은 반짝이는 장화에 눈이 팔려 복주머니를 내어 주려고 했다. 저렇게 반짝이는 장화라면 인간에게 주고, 수없이 많은 참치캔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톰은 생각했다.

당연하죠! 당장 바꿔드릴게요!

아주머니는 씨익 웃으며 톰의 목에 걸려있는 복주머니를 떼려고 다가왔다. 그 때, 줄곧 톰 옆에서 생각하고 있던 제리가 톰을 타고 올라가더니 복주머니를 떼고 있는 아주머니의 손을 세게 물었다.

으악! 이 쥐는 뭐야!

아주머니는 제리에게 손을 물리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톰의 복주머니에서 손을 뗐다. 톰은 제리의 돌발행동에 화가 나 외쳤다.

제리! 이게 무슨 짓이야!

그러자 제리가 톰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돌발행동을 한건 미안해.
하지만 저 아주머니 눈빛부터가 이상했는걸. 게다가 밤인데 썬글라스를 끼고 있어!
그리고 이대로 복주머니를 다른 사람한테 넘겨주기에는 아직 복주머니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아.
분명 할머니가 번쩍하고 나타나서 복주머니를 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우리 조금 더 가지고 있어 보자.

톰은 제리의 말을 듣고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런가...? 하긴. 그 아주머니 제안부터 너무 수상했어. 복주머니랑 구두를 바꾸자니.

톰의 귀가 팔랑이며 제리의 말에 수긍했다. 톰은 아주머니에게 거절의 의사를 밝혔고 아주머니는 입맛을 다시며 발걸음을 돌렸다. 톰에게서 멀어지며 아주머니는 생각했다.

(저 복주머니, 특이한 분위기를 풍겨. 분명 그 할멈이 만든게 틀림없어. 어떻게든 내가 가져야하는데...
어디로 가는지 좀 지켜봐야겠다. 그놈을 시켜야겠어.)

또각또각 울리는 하이힐 소리에 분노가 가득찬 듯했다. 톰과 제리는 그런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의아해하며 바라보았고, 서로 눈이 마주치자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먹을 수도 없는 복주머니를 왜 가져가려고 한걸까. 이 복주머니에 정말 무언가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기라도 한걸까?

톰과 제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톰의 발은 쉽게 떼어지지 않았다. 톰이 아는 노을 너머의 세계란 TV속 화면에 나타난 다양한 풍경들이 전부였다. 가는 방법도, 그곳에 가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단순히 노을을 따라가면 되는걸까? 그저 톰이 원하는 것은 TV 속 화면의 그 평화로운 풍경을 보며,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줄 새로운 집사를 만나는 것이 전부였기에 그저 향하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지독한 외로움에 슬퍼진 톰은 그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었던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제리는 톰의 머뭇거리는 발과 흔들리는 눈빛을 보고 바로 톰이 노을 너머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음을 눈치 챘다. 그러자 괜히 톰을 따라 노을 너머 세계로 향하는 이 여정이 그들에게 맞는 선택인지 혼란스러워졌다.

괜한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배는 점점 고파 왔으며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혹여 노을 너머 세계를 찾게 되더라도 톰과 자신이 기대한 만큼의 공간이 아닐까봐 걱정이 들기도 하였고, 만약 이 여정의 끝은 결국 아무것도 없었음을 깨닫게 된다면 너무나도 허탈할 것이라는 생각이 피곤함에 지친 제리의 마음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이러한 생각들에 휩싸인 채 제리는 무의식적으로 톰을 힐끗 바라보았다. 톰 또한 비슷한 상황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그만두고픈 마음을 뒤로 한 채 톰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다.

톰, 널 믿고 이 여정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확인되지 않은 곳을 찾아 헤메는 건 위험한 것 같아. 
어딘지도 모르는 노을 너머 세계로 향한다는 건 난 조금 무서워.
너를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과연 그런 완벽한 세상이 있다는 것에 의문이 들기도 하고... 
정말 이 여정이 맞는거야...?

톰은 제리의 말을 듣자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미안해 톰.. 몸이 피곤하다보니 걱정이 조금씩 앞서는 것 같아서 그래.. 

제리의 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제리는 현실을 이성적으로 직시했을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노을 너머 세계에 가기를 원한 것은 톰이었다. 노을 너머 세계로 향하는 방법을 모르는 상태로 무작정 돌아다니는 것은 위험했다. 노을 너머 세계의 정체에 대한 확신도 없이 돌아다니는 것은 그들을 거리의 방랑자로 만들 뿐이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어두운 밤이다. 만약 가는 길을 정확히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나도 캄캄한 밤.

하지만 그들은 목적지도, 길 조차도 모르지 않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움직이는 것이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은 길에서 생활했던 톰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자칫하면 몇 시간전 슬링키를 상대했던 것처럼 슬링키와 같은 맹수들의 표적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톰은 이미 자신의 막연한 계획이 터무니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상태였고,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보니 톰에게 막연함이라는 심정이 가져주는 무서움은 순간적으로 더욱 크게 다가왔다. 슬링키, 그 이름만 들어도 등골이 오싹함과 동시에 쫓겼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라 톰의 털이 일시적으로 곤두섰다.

지금이라도 제리는 집으로 돌려보내야 하나?
괜히 나 때문에 곤란해지는 일이 없어야 할 텐데...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던 찰나에 그 순간, 톰은 머릿속을 스쳐가는 하나의 장면을 포착하였다. 좀전까지는 알아채지 못했던 골목길이 눈에 들어왔고, 기억을 더듬어보니 TV에서 노을 너머 세계를 접할 때 봤던 거리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톰은 잠시 넋이 나간 상태로 그 골목길을 뻔히 바라보았고 갑자기 이상한 태도를 보이는 톰이 이상하여 제리는 톰의 꼬리를 붙잡고 흔들었다.

톰? 갑자기 어디를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는거야? 갑자기 그러고 있으니깐 놀랐잖아....

톰은 제리가 자신의 꼬리를 잡고 흔들자 다시 정신을 차렸다. 무엇인가에 홀린 듯 톰은 그 골목길의 기운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분명 TV속에서 본것같은 길이었지만, 어쩌면 막연한 기대가 만들어낸 허구적 공간일 가능성이 더 컸다. 톰은 그래도 느낌이 가는대로 마지막으로 그 골목을 한번 확인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제리, 저기 오른편에 있는 빵집 옆 작은 골목길 보이지? 
내가 전에 TV에서 봤을때의 골목이랑 너무 비슷하게 생겼어. 
내 기억이 왜곡되어 저 골목이 특별해 보일수도 있지만 우리 마지막으로 저기 골목만 한번 확인해봐도 될까?

톰은 섣불리 제리에게 들뜬 마음으로 저 골목으로 가보자고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이미 둘 다 심신이 지쳐있는 상태였고, 만약 저 길이 틀리면 이젠 제리에게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 뭐 정말 운이 좋으면 저 길이 맞을수도 있고 만약 맞다면 너무 기쁘겠다. 하지만, 혹여 저 길이 아니더라도 우리 실망은 하지 말자. 알겠지?

뜻밖의 제리의 대답이 톰에게는 너무나도 고마웠고 그렇게 톰과 제리는 조명이 은은하게 비춘 그 골목길을 따라 걸어내려갔다. 길을 따라 걸어간 곳의 끝은 막다른 골목이었다. 허름한 담벼락이 그들앞에 있었고, 결국 그들은 다시 골목밖으로 걸어나왔다. 그들이 알아차렸는지 모르지만, 그들이 그 자리를 떠나자마자 수상한 그림자가 그들의 뒤에서 재빨리 움직였다.

톰은 제대로 된 정보도 없이 행동한 자신 때문에 제리까지 불안하게 만든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대론 톰도, 제리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채 거리를 헤매게 될 것이 뻔했다. 결국 톰은 제리와 헤어지기로 결심하고 제리에게 말을 건네었다.

제리, 어쩌면 아까 네가 했던 말이 맞을수도 있어. 내가 막연하게 무작정 같이 가자고 해서 미안해.
이쯤이면 이제 넌 돌아가도 될 것 같아. 무책임하게 이렇게 또 말해서 미안해.
내 걱정하지 말고. 난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 생각을 좀 해봐야할 것 같아.
오늘은 정말 고마웠어. 너에게 신세를 많이 진 것 같아.
다음번 우리가 만날 땐 우리 둘 다 행복했으면 좋겠어!

톰은 지금까지의 제리와의 여정을 애써 웃는 얼굴로 마무리 짓고 있었다.

내심 제리와 함께 가는 것을 바랐기 때문일까. 혹은 제리가 끝까지 자신과 함께 해주더라도 목표 지점에 도달하지 못했을때의 실망한 모습을 확인하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그도 아니면 홀로의 여행이 무서웠기 때문일까. 톰은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제리는 그런 톰을 두고 떠나는 것이 내심 찝찝했지만, 제리는 지금 너무 배고프고 지쳤다.

톰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너무 피곤한 몸은 더이상 톰을 따라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제리는 이대로 다리의 힘이 풀려 달릴 힘조차 잃어버리면 톰에게는 짐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톰의 행선지도 모른 채 내버려 두고 가기엔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제리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톰에게 말을 건넨다.

네 덕분에 나도 오랜만에 옛 추억도 떠오르고 즐거운 시간이었어! 톰!
그렇지만 네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이렇게 두고 가는 건 내 맘이 편치 않아.
나도 할 수만 있다면 너와의 여행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어.
하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는 곳을 향해 가는 건 너무 위험해.
그래서 네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고 있으면, 나도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아.

제리의 말을 듣고 톰은 순간적으로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지금의 톰에게는 별다른 목적지도 없이 불투명한 미래 뿐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 제리마저 톰을 떠나게 된다면 톰은 어딘가 의지할 곳 또한 없어지는 꼴이다. 이젠 정말 혼자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그대로 제리에게 이야기한다면 제리는 마음 편히 발걸음을 돌리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톰은 제리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기에 애써 괜찮은 척 제리에게 거짓말을 했다.

내가 집 외에 원래 자주 머물던 곳이 있어. 거기서 잠시 휴식을 취해야 할 것 같아.

그 대답을 들은 제리는 안심한 표정을 보였다.

그래... 알겠어... 나중에 내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 꼭 나를 불러줘! 달려갈게!
우린 친구니까!

제리는 톰의 행복을 빌어주며 못내 발걸음을 돌렸다. 제리도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제리도 마냥 톰과 함께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기에 무겁지만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톰은 제리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톰은 오늘 하루 좋은 친구인 제리와 함께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리가 아니었다면 톰은 집사에게 받은 충격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지금까지도 혼자 쓸쓸히 길거리를 배회하며 스스로를 탓하기만 했으리라. 과거의 인연이 지금 톰의 상처를 치유해준 것이다.

그렇게 제리와 헤어진 후, 홀로 걷던 톰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사료 몇 입, 캔 참치 반쯤 먹은 게 전부였기에 배가 고픈건 지극히도 당연한 현상이었다.

평소보다 많이 돌아다녀서 그런가...
허기가 져서 너무 힘들어...
이제라도 음식을 찾아야 해...!

먹을 걸 찾기 위해 곰곰이 생각하던 톰은 아까 만났던 미용실 소녀가 떠올랐다.

맞다..! 아까 만났던 미용실 소녀에게 찾아가 볼까?
나를 반기는 눈치였으니 분명 다시 가면 먹을 걸 줄 거야!!

그렇게 톰은 배고픈 배를 이끌고 미용실로 걸음을 향했다. 그러나 힘들게 도착한 그곳에는 소녀가 아닌 그녀의 엄마가 가게 정리를 하고 있었다.

어머, 이 고양이 또 왔네!! 어휴 또 고양이에게 간식을 줬었구먼. 얘야 여기 자꾸 오면 안 돼!!

소녀의 엄마는 '훠이훠이'라는 소리를 내며 톰에게 멀리 가라는 손짓을 하였다. 톰은 그녀가 절대 음식을 주지 않을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길거리 생활은 자신에게 먹이를 줄 사람 정도는 구별할 능력을 줬다. 포키를 챙겨주던 소녀를 그녀가 탐탁치 않게 여겼던 걸 다 봤던 톰이었다. 그래도 톰은 너무나 배가 고팠다. 배고픔은 간절함을 불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전보다는 조금 멀찍이 앉아 조금이라도 더 버텨 보았다. 하지만, 빗자루를 가져오는 소녀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재빨리 달아났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하루인데, 빗자루로 매질까지 당하게 된다면 너무나 서러울 것 같았다.

빗자루까지 가져와 쫓아내다니, 정말 너무해...
소녀가 있었다면 분명 날 반겼을 텐데...

톰은 시무룩해졌지만, 곧바로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하기엔 배가 너무 고팠고 심지어 속이 쓰릴 지경이었다. 혹시라도 소녀가 나타날까 전봇대 뒤 담장에 올라가 지켜보았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미용실 불이 꺼지고 자물쇠가 채워지는 소리에 톰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선 더는 무언가를 바라긴 힘들었다. 발길을 돌리는 것이 맞는데,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톰은 눈앞이 캄캄해졌고 갈 곳을 잃은 기분이 들었다. 톰은 다시 발길을 돌려 발길이 닿는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집에서의 축축한 사료, 미용실 소녀의 캔 참치 따위는 톰의 배를 만족시키기에는 터무니없는 양이었다. 톰은 축축한 사료라도 더 먹고 나올 걸 하며 후회했다.

아주 배가 불렀었구나. 조금이라도 더 챙겨먹고 나왔어야 했는데...

하지만 톰은 후회도 잠깐,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마라'라는 말처럼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하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톰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듯 먹을 것을 찾기 위해 무작정 길을 나섰다. 톰은 공터를 나와 커다란 상가 건물이 있는 모퉁이를 돌아 상점가로 들어갔다. 생각해보니 상점가에는 예전의 톰에게 밥을 주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골목길 옷 가게, 큰길 편의점, 과자가게, 카페... 어딜 가든 그를 반겼고, 맛있는 밥을 주곤 했었다.

맞다. 이곳엔 나한테 밥을 챙겨주던 사람들이 꽤 있었지!
돌아다니다 보면 분명 한명은 나를 반겨줄거야!
골목길 옷 가게 종업원? 큰길 편의점 주인아저씨? 아무나 좋으니 제발 나타났으면...!

상점가 큰길로 들어선 톰은 가장 먼저 보이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길에서 생활하던 시절, 톰이 너무 배고플 때 향하던 곳이 바로 편의점이다. 편의점에는 고양이 간식을 몇 가지 팔았는데, 톰이 밖에서 애처롭게 사람들을 쳐다보면 간식을 사다가 먹여주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이번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톰은 기대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편의점에는 그때의 그 사람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처음 보는 얼굴의 사람이 있었다. 톰은 편의점 문 앞을 어슬렁거렸다.

하지만 편의점 주인은 톰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톰은 어떻게 관심을 끌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저 사람 내가 여기 있는지조차 모르는 거 같은데? 유리문 앞쪽에서 한번 울어봐야겠다.

톰은 가게 문 앞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귀여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지금 눈앞의 사람은 길고양이 시절 밥을 챙겨주던 따뜻한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톰이 길고양이 신세를 벗어난 일은 꽤 오래된 일이었으므로, 가게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야옹아!! 여기 들어오면 안 돼! 저리 가!
훠이~~훠이~~

바뀐 편의점 주인은 고양이는 톰에게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내가 이렇게 귀여운데 저리 가라며 나를 쫓아낸다고? 어쩔 수 없지. 필살기 중 하나를 써봐야겠어. 좋아하지 않고는 못 배길걸?

톰은 집에 처음 오게 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필살기를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었다. 톰의 필살기는 바로 그의 초롱초롱한 눈빛이었다. 톰이 눈을 크게 뜨고 상대를 지긋이 쳐다보면 상대는 이내 못이기겠다는 듯이 함박웃음을 짓고, 톰에게 호의를 베풀었기 때문이다. 톰이 자신의 필살기를 활용하여 지금까지 사람들의 환심을 사서 맛있는 음식을 먹어 본 횟수는 셀 수 없이 많았다. 큰 구슬처럼 동그란 눈에 호수처럼 투명한 눈동자는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넋을 놓고 바라보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톰은 초롱초롱한 눈빛 한방이면 모두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 것이라는 강한 확신에 가득 차있었다.

톰은 편의점 주인을 바라보며 초롱초롱한 눈빛을 발사했다.

저 집사도 당연히 좋아하겠지?

평소 무뚝뚝한 편이던 톰이지만 이번만큼은 한껏 애교를 부렸다. 그러나, 이는 전혀 소용이 없었다. 편의점 주인은 좋아하기는커녕 화가 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급기야 주인은 빗자루를 들고 톰이 있는 자리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저 고양이는 왜 꼼짝도 않는 거야?!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에 톰은 당황했다. 찰나의 시간동안 톰은 생각했다.

도대체 어떻게 내 필살기를 보고도 흔들리지 않는 인간이 있을 수 있는거지?

빨리 안 가? 으유 우리 까미 깰라 피해 주지 말고 얼른 저리 가지 못해!

...까미? 까미는 또 뭐람??

생소한 이름에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편의점 주인을 눈으로 따라가보니 무슨 말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까미는 바로 이 편의점 주인이 키우는 고양이였고,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다.

하지만, 톰은 바로 알 수 있었다. 까미가 집사의 귀여움을 받기 위해 자는 척을 한다는 것을 말이다. 까미는 톰과 눈을 마주쳤고 실눈을 뜬 채 톰을 놀리듯이 혓바닥을 내놓았다.

톰은 마음 같아서는 편의점 주인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더 애원하고 싶었지만, 얄미운 까미의 모습을 보고 자존심이 상해 그럴 수 없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자신만을 바라봐 주는 집사가 있다는 까미가 내심 부러웠다.

까미를 깨워볼까도 생각해보았지만, 괜히 그랬다가 빗자루에 맞으면 아플 것 같아 그냥 포기했다. 결국 톰은 빠르게 가게 앞을 떠났다.

너무 박한 거 아냐? 그 녀석 밥 조금 나눠주면 어디가 덧나나...
휴... 배고파. 얼른 나에게 먹이를 줄 다른 사람을 찾아야겠어.
누가 있을까? 음... 옷 가게 종업원? 그래, 옷 가게 종업원이라면 분명 나에게 먹을 것을 줄 거야.

옷 가게 종업원에게 가던 길에 톰은 어느 카페를 지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카페 안에서조차 고양이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고양이는 주인으로부터 예쁨을 받고 있는 것이 온몸에서 느껴졌다.

톰은 사랑받고 있는 다른 고양이들을 보면서 내심 약간은 부러웠다. 아니 사실 매우 부러웠다...

내가 바라던 것은 그리 특별하지 않았는데...

다시 한번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다 우울해진 톰이었지만 톰을 터벅터벅 길을 걸어갔다.

길을 걸어내려가다가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톰이 도착한 곳은 붕어빵 트럭이었다.
트럭 안에서 붕어빵 아저씨는 라디오를 틀어놓은 채로 붕어빵을 진열하고 있었다.

요 며칠 이상하게도 야채를 구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틀 전부터 야채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야채가 전부 사라졌다니... 세상 참 이상하게 돌아가는구먼..

뿡어빵 아저씨는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사실, 톰은 예전에 막내 딸이 사온 붕어빵을 몰래 먹었다가 다음날 구토와 설사를 하는 바람에 동물병원까지 갔던 아픈 기억이 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톰은 빵 종류의 음식은 보기만 해도 배가 아파오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처럼 굶주린 톰에게 그런 기억은 전혀 나지않는다. 오히려 노릇노릇 구워지는 붕어빵 냄새가 톰의 침샘을 터뜨렸다. 톰은 붕어빵을 훔칠 수는 없을 것 같으니 어떻게든 붕어빵 아저씨의 관심을 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톰은 군침을 삼키며 붕어빵 트럭을 한두바퀴 맴돌았지만, 붕어빵 아저씨는 일하기 바빠 톰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애처롭게 애옹애옹 소리를 내보기도 했지만, 대답없는 메아리만 돌아왔다.

에휴, 불쌍한 길고양이한테 붕어빵이나 하나 던져주지...

톰은 애꿎은 붕어빵을 원망하며 다시 길을 나섰다.

같은 시각 제리는 아직까지 문을 닫지 않은 한 채소가게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평소 채식을 즐기지 않는 제리는 그냥 무심히 지나쳤다. 만약 제리가 톰이 야채를 곁들인 샐러드를 즐긴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조금 더 관심을 기울였을수도 있다. 그러나 하필이면 아까 복주머니를 노렸던 장화 아주머니가 아직 그 거리에서 서성이는 모습을 목격하자, 제리는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으이그.. 저 사람은 그냥 무슨 장사꾼이었나보다. 아까부터 저 근방에만 계속 서있잖아?
혹여나 톰이 다시 저 아주머니를 다시 마주치면 안되는데...

제리는 톰에 대한 생각이 아직도 마음 한켠에 자리잡고 있어 아주머니를 보자마자 톰의 걱정부터 한 것이다.

한편 톰이 붕어빵 트럭을 지나 도착한 옷가게에는 아주 슬프게도, 집사는 보이지 않았다. 고깃집, 과자가게, 카페에서도 집사를 찾을 수 없었다. 상점가 어느 곳에도 집사는 보이지 않았다. 평소 톰이 상점가 집사들에게서 밥을 얻어먹었던 시간은 낮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늦은 저녁 시간이었기 때문에 가게의 주인들은 다들 가게 문을 닫고 귀가했던 것이었다. 톰은 자신의 주인이 시간쯤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기에 어렴풋이 상점가 사람들도 집으로 돌아갔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 상점가 사람들에게서 무언가를 얻어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집을 떠나고 제리마저 없는 지금, 톰은 먹을 것조차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톰은 이 사실을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계속 주변을 서성거려도 자신의 처지는 나아질 것이 없었다. 이제서야 자신에게 먹을 것을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어렴풋이 와닿았다. 그는 전보다 배가 더 고파졌다. 원래 들에게 잘 보이려 했던 것보다 더 열심히 아등바등하는 자신이 비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톰은 집고양이였던 시절을 떠올렸다. 사랑이 고팠어도 배는 고프지 않았다. 안락했던 시간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평소와 같았으면 지금쯤 다들 집에 돌아왔겠지? 
아마 한 번쯤은 날 쓰다듬어 줬을지도 몰라... 그리고 아침에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맛있는 간식을 주겠지...

배고픔에 잠시 주인과 보금자리를 떠올렸으나 그는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떨쳐냈다. 톰은 집을 나온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내가 느낀 배신감은 진짜였다고...

톰은 단순히 홧김에 집을 나온 게 아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쌓인 외로움과 서운함이 한 번에 폭발한 것이었다. 자신에 대한 그들의 태도 변화를 살펴보았을 때 이 모든건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다. 때문에 지금 다시 그들에게 돌아간다면 자신이 느낀 슬픔과 집을 떠나겠다던 결심, 그리고 제리에게 보인 눈물마저도 모두 하찮은 것이 되는 꼴이었다. 그러기엔 톰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내가 허기 따위에 굴복할 것 같아...?
내 자존심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고.

톰은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음식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톰은 음식은커녕 음식의 부스러기도 발견할 수 없었다.

다들 밤이 되었으니 집으로 간 것 같아. 최악이야... 먹을 것을 어디서 구한담?
도대체 어딜 살펴봐야 할까? 여러모로 감이 떨어진 것 같아. 분명 아까까지는 자신 있었는데... 어떡하면 좋지...

길고양이 시절에는 살기 위해 뭐든 먹었다. 처음에는 위험한 음식이 무엇인지 몰라 구분 없이 먹었다. 음식물 쓰레기에서 뒤져보기도 하고 길거리에 흘린 음식을 찾아 먹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가끔 탈이 나서 고생하기도 했다. 운이 좋으면 사람들로부터 참치캔이나 사료를 먹긴 했으나 길고양이 삶에서 극히 일부였다. 경험이 쌓여 위험한 음식과 안전한 음식을 구분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집고양이의 청결하고 편안한 생활에 익숙해진 톰은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과 같은 더러운 일은 결코 하기 싫었다. 항상 집사들이 음식을 챙겨주다 보니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하는 능력이 떨어진 것이다.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한 것은 물론, 어디로 가야 할지도 결정하지 못한 톰은 풀이 죽은 모습을 한 채 주변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톰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바퀴가 굴러가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톰의 귀를 간지럽혔고, 희미한 피 냄새가 톰의 예민한 코를 자극했다.

...누구지?? 도망쳐야 하나?

바퀴가 구르는 소리, 희미한 피 냄새... 모든 단서가 하나의 답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냄새는... 고기?!!!
분명 고기야! 미칠듯한 고기 냄새가 날 끌어당기고 있어!!!

굶주린 톰에게 오랜만에 맡게 된 날 것의 냄새는 낯설었지만 동시에 매혹적이었다. 톰은 본능적으로 냄새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요즘 소고깃값이 너무 비싸졌어.

이 한마디와 함께 딸려오는 소고기 더미의 카트. 톰의 머리는 집을 가리켰지만, 눈은 머리와 반대 방향을 가리키고만 있었다. 톰의 이성과 본능이 서로 충돌하고 있었다. 톰의 이성은 인간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었다. 길고양이 시절에 인간의 원한을 샀다가 호되게 당한 동료들을 톰은 수도 없이 목격했으니 말이다. 또한, 추위와 허기에 지친 몸을 이끌고 제대로 도망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톰의 본능은 계속해서 속삭였다. "배가 고프다"라고. 하지만 그 한 문장의 힘은 잔뜩 굶은 고양이가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톰은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양심은 식욕 앞에서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얼어버린 몸은 풀렸으며, 위협적인 풍채의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톰의 시선은 오직 소고기에 고정되었다. 톰은 소고기를 어떻게 가지고 올 것인지 생각하였다.

내가 저 소고기를 어떻게 가져올 수 있을까..?
그래, 일단 재빠르게 카트 근처로 가는 거야. 
내 걸음걸이가 들리지 않게 살금살금 가야겠어.
그다음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고기를 물어서 달아나야지.

지금 이 순간 톰의 머릿속은 눈 앞의 고기로 가득찼다. 굶주린 고양이의 이성은 본능을 이길 수 없었다.

지금 나는 너무 소고기를 먹고 싶어. 빨리 계획을 실행해야겠어!

의지가 확고해진 톰은 소고기를 향해 돌진했다. 카트 위를 단숨에 올라가서는 고기 한 덩이를 냉큼 집어서 달렸다. 톰의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아앗 저건 뭐야! 도둑고양이 잡아라!

소고기 더미의 카트를 끌고 가던 정육점 아저씨는 달려와 소고기를 낚아채는 톰을 보며 소리쳤다. 정육점 아저씨는 톰을 잡기 위해 있는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르고 날렵한 고양이와 그 보다 훨씬 크고 둔한 몸을 가진 인간은 달리는 속도부터 비교할 수 없었다.
아저씨에겐 미안하지만, 톰은 오로지 본능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굶어 죽을 것 같이 배고팠던 톰에게는 생존이 달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콰광쾅!

결국 정육점 아저씨는 톰을 잡기 위해 달리다 소고기 카트에 걸려 넘어지게 되었다.

이런 젠장!! 저 도둑고양이 잡히기만 해봐라!!

톰은 잡히지 않기 위해 긴장하며 도망치면서도, 입 안에서 느껴지는 소고기의 맛에 한껏 취했다. 소고기 맛의 황홀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아직 식도로 넘어가지 않았지만, 입안에 물고 있는 것만으로도 소고기의 풍미가 느껴졌다. 톰은 달리면서 우아하게 소고기를 뜯을 자신을 상상하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지. 빨리 먹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온종일 힘들었던 것은 이미 기억에서 지워진 듯하다. 물론 뒤에서 정육점 아저씨가 쫓아왔지만, 재빠른 톰이 눈에 보이지 않자 이내 포기하였다.

오 이제 안 쫓아오나? 그럼 이제 이 소고기는 내 차지군!

톰은 너무 기뻐 싱글벙글 웃었다.

다음에도 배가 고프면 저 정육점에 또 훔쳐야지! 저런 느림보 아저씨라면 날 절대 따라오지 못할 거야.
한동안은 굶주릴 걱정 없겠어.

톰은 그렇게 한참을 도망치다 수풀로 들어가 소고기를 내려놓고 숨을 고르던 중 어둠속 반짝이는 두 눈을 발견했다.

낯선 고양이였다. 톰은 움찔했다. 밝은 노란 털을 가진 고양이는 톰보다 2배는 더 커 보였다. 톰은 낯선 고양이가 자신의 소고기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톰은 싸움을 즐기지는 않지만, 저 고양이가 자신의 고기를 훔치려 한다면 자신에게 승산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고기를 전부 빼앗길 수도 있다는 생각에 톰의 몸이 경직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은 지쳐서 싸워도 이길 수 없을 텐데...
게다가 힘들게 얻은 소고기를 빼앗기면 난 오늘 하루 온종일 굶어야 할지도 모른단 말이야.
제발, 그냥 지나가라...!

톰은 이가 아플 정도로 고기를 세게 물며, 노란 고양이를 경계하며 그 미묘한 분위기를 모면하려고 애썼다. 경고의 의미로 꼬리도 위아래로 내리쳤다.

톰은 노란 고양이를 경계하며 두려움에 떠는 도중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저 노란 고양이가 내 고기를 뺏어가려는 걸까?
왜 자꾸 나를 쳐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까? 단순한 내 착각일까..?
제발 나에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 길만 무사히 통과해야지.
일단 눈을 마주치지 말아야겠어. 눈을 마주쳤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제발 무사히 지났으면...

다행히도, 노란 고양이는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았는지, 톰을 무시하고 뒤돌아 서서 느릿느릿 걸어 사라졌다.

휴... 다행이다.

톰이 고기를 입에 문채로 걸어가는 모습이 불쌍해 보였는지, 노란 고양이는 한번 눈짓을 주고는 지나친것이다. 하지만, 톰을 지나쳐 계속 걸어가고 있던 노란 고양이 앞에, 슬링키가 슬금슬금 다가왔다. 갑작스러운 개의 등장에 노란 고양이는 털을 바짝 세우며 경계했다. 슬링키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회유하듯 말을 걸었다.

오, 너와 싸울 생각은 없어. 난 그저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을 뿐이야.

아... 어 그래..그게 뭔데?

혹시 이 근방에서 톰이라는 고양이를 못봤니? 검은색과 회색 줄무늬가 있는 벵갈 고양이 말이야. 

노란 고양이는 방금 마주친 소고기를 먹고 있던 고양이가 떠올랐다.

아, 그 노란 눈의 고양이 말하는 거지?
아까 저쪽에서 소고기를 물고 걸 마치 도둑 고양이처럼 사방을 경계하며 걸어가고 있는걸 본 것 같아.
저 골목으로 들어간거 같은데?

노란 고양이는 슬링키와 톰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당연히 몰랐고 당장 자기 앞에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커다란 개가 무서워 슬링키에게 좀전에 봤던 모든 상황을 설명하였다.

오 그래? 고맙다, 노란 고양아. 네게 신세를 졌네.

한편, 톰은 노란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때 톰의 주변에서 또 다른 인기처과 움직임이 느껴졌다. 또 다른 길고양이다. 이번엔 검은 고양이다. 그 길고양이는 소고기를 계속해서 쳐다보았다. 톰도 그 고양이를 바라보았는데 그때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꾸르르륵...

상대 길고양이 배 속에서 나는 소리였다.

뭐지? 저 고양이한테 나는 소리인 건가? 저 친구도 배가 고픈가 보군...

톰은 배고파 보이는 길고양이를 보고 아주 잠깐 고민하였다. 하지만 힘들게 얻은 고기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마음을 굳혔다.

어떻게 얻은 건데... 이건 뺏길 수 없어.

길고양이도 안쓰러웠지만, 톰은 배가 너무 고팠다. 그래서 경고의 소리를 내며 털까지 곤두세웠지만, 길고양이는 자꾸만 다가왔다. 그러나 마주한 길고양이는 너무나 힘없고 왜소한 모습이었다.

마치 갈비뼈가 보이는 듯 깡마른 길고양이는 한줌의 고기라도 허락된다면 무엇이든 할것만 같았다. 길고양이의 겉모습을 보게 된 톰은 아까보다 마음이 더 약해졌다. 집사에게 구해지기 전 굶주리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길고양이 시절에는 이런 고민은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저 눈앞에 놓인 먹이를 입에 밀어 넣기 바빴겠지. 쓸데없는 동정심은 생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보다 더 굶은 것으로 보이는데 좀 나누어 줘야 하나?
하지만 내가 누굴 걱정할 처지는 아닌걸..

길고양이를 마주한 채 가만히 서서 끊임없는 내적 갈등이 이어졌다. 이런 톰의 고뇌를 눈치채기라도 한 듯 길고양이는 더욱더 불쌍해 보이도록 행동하였다.

사실 야생에 길들어져 모든 것이 익숙한 길고양이는 이 상황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윤기 나는 털과 다듬어진 발톱, 이것은 톰이 집고양이임을 완벽하게 증명했다. 굶주림에 윤리, 도덕 따위는 잊은 지 오래. 길고양이는 동정심 유발하기 작전 돌입했다. 길고양이에게 톰은 번듯하게 애완 묘로 자라 세상 물정을 잘 모를 만한 약한 존재였다. 그렇기에 이러한 점을 이용해 철저히 계획적으로 고기를 뺏어가려 접근한 것이었다.

야옹, 너무 배고프다. 며칠째 밥을 먹지 못하니 쓰러질 것 같네, 흑 흑...
고기냄새.. 고기는 커녕 밥을 못먹어서 구걸하러 다닐 힘도 없어.. 

사실 길고양이는 오늘 이미 한 끼를 먹어 배고픔을 참을 수 있었지만, 며칠 못 먹은 척을 하였다.
하지만 톰은 그런 길고양이의 사정은 알 수 없었다. 톰은 이미 집고양이로 너무 오랫동안 살아와 길고양이들의 습성을 잊어버린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저 고양이는 나보다 더욱더 고달픈 삶을 사는 거 같네, 아무리 혹독한 야생이라도 내가 도와줘야겠어.

톰은 그만 길고양이의 꾀에 넘어갔다. 길고양이가 불쌍하다고 생각해 혼자 먹기에도 부족한 고기를 나눠주기로 결심했다.

야 거기 있는 고양이, 배고프지? 조금이지만, 먹어도 돼. 

톰은 자신이 가져온 소고기의 일부분을 잘라서 길고양이에게 건넸다. 힘들어하는 동족을 도와주는 것은 고양이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자신도 아까 포키의 참치캔을 먹었지 않았던가. 그러나 길고양이는 이런 톰의 마음을 모른 채, 오직 먹을 것을 손쉽게 얻었다는 생각으로만 가득했다.

오늘은 운이 좋군...! 게다가 싱싱한 소고기라니!
바보같은 녀석! 역시 세상물정 겪어보지 못한 놈들은 이렇게 멍청하다니까!

길고양이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한껏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고마워! 이 은혜는 죽을 때까지 잊지 않을게...! 

말과는 달리 길고양이는 이 일을 은혜로 기억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세상 물정 모르는 호구에게 소고기를 공짜로 받았던 일로 기억할 것이다. 길고양이가 또다시 불쌍한 연기를 하며 앞발로 소고기 전체를 가져가려고 하자, 갑자기 톰이 자신이 건넨 소고기를 세게 붙잡았다. 톰의 하얀 발톱이 번뜩인다. 길고양이는 깜짝 놀라 톰을 쳐다보았다.

왜... 그래? 진정해 친구..!

길고양이는 만만하게 생각하고 있던 톰이 자신을 노려보자 당황하였다.

그것만 가져가야지!
나머지는 내가 먹을 것이니 너는 이것만 먹어.

톰이 길고양이에게 말했다. 부드럽지만 단호한 말투로 길고양이에게 선을 그었다.

자식,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네. 마냥 길들여진 반려묘따위가 아니였어.
한때 골목길에서 생활 좀 했나 본데..

길고양이가 속으로 생각했다.

길고양이는 모르겠지만, 톰도 예전에는 험난한 길에서의 생활을 겪어봤던 고양이다. 길에서 겪는 배고픔, 늦은 밤 차가운 길바닥, 종종 마주치는 나쁜 인간들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잠시 동정심에 흔들렸지만, 길고양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처음 보았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도 길에서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지 알았기에 도움을 준 것뿐이었다. 톰은 자신이 손해를 입어가며까지 길고양이를 도와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동정심 유발로 먹이를 구할 수는 없는 법. 직접 먹이를 구하지 않고 남에게 기대면 오래 살아남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톰도 길고양이 생활 초반에는 직접 먹이를 구하지 않고 도움을 많이 받았었다. 그래서 항상 먹이를 먹는데 눈치가 보였다. 어느 날은 더 많은 음식을 탐내다가 그 무리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그 이후에 직접 먹이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런 경험을 겪어본 톰이었다. 그렇기에 톰 나름대로 교훈을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톰은 자신의 고기 일부분만을 건네주었다. 길고양이는 당황한 기색으로 톰을 쳐다보았다.

안 받을 거면 말고.

톰이 입으로 작은 부분을 가져가려던 순간 길고양이는 잽싸게 그 고기를 낚아챘다.

앗! 안돼!!
알았어.. 받을게!!

그러고는 고기를 받자마자 몸을 휙 돌려 도망가듯이 가버렸다. 톰은 고기를 입에 물고 몸을 돌려 달려가는 길고양이를 한동안 쳐다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내가 속을줄 알았냐? 쯧...

그리고 자신도 남은 소고기를 입에 물고 정처 없이 걷기 시작했다. 톰은 더는 굶주린 배를 참을 수 없어 가던 길을 멈추고 길가에서 소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우와 이렇게 맛있을 수가…! 조금 전 고기 카트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어!

갖은 고생 이후 먹어본 고기의 맛은 세상 그 어떤 음식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했다. 최상급 꽃등심이었다. 연하고 부드러운 살코기 사이사이에 녹아있는 부드러운 지방은 한입 먹을 때마다 부드럽게 입안을 감싸고 돌았다. 어쩌면 아저씨가 왜 그렇게 무섭게 쫒아왔는지, 조금 짐작이 가는 톰이었다.

소고기의 맛에 톰은 계속 감탄을 하면서도, 홀로 방황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쓸쓸함을 느끼고 있었다.

정처 없이 걷던 톰은 이내 안전한 환경이라 생각하고 순식간에 소고기를 먹어 치웠다. 남은 소고기를 씹으며 이내 톰은 생각에 잠겼다. 먹을 것을 양보한다는 것은, 길거리에서 살 때만 해도 상상도 못 할 행동이었다.

톰은 오늘 참치캔과 소고기를 두고 자신이 했던 행동을 돌아보며 편한 집 생활이 자신을 많이 바꾸어 놨다고 생각했다. 길에서 돌아다니기에 썩 좋은 변화는 아닌 것 같긴 하지만 예민하던 시절보다는 마음이 한결 편해진 것 같아 집사들에게 조금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입안의 소고기는 가끔씩 가족들이 고기를 먹을때 건네주던 따듯한 고기 조각들을 생각나게했다. 갑자기 자신이 먹고 있는 고기가 초라해보이고 어쩐지 부당해보였다.

슬링키를 마주한 상황.. 톰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일단 귓걸은질을 시도했다. 슬링키의 코 방향은 이제 톰의 직선거리에 위치했다. 직진하는 슬링키.. 톰은 침착해야했다. 저 멀리 제리가 보이기도 했다.

전에는 제리의 도움으로 슬링키에게서 벗어났는데...

건물과 건물사이 좁은 틈으로 살금살금 몸을 이동했다.

부스럭

낙옆을 밟았다. 톰의 심장은 철렁 내려앉고 슬링키의 고개가 톰의 위치로 향했다.

하지만.. 이제 돌아가지 않아. 그곳에 이미 내 자린 없는걸....

아니. 어쩌면 돌아갈 수 없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꽤나 시간이 지났지만 상처 입은 톰의 마음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만약 자신이 그들에게 돌아가 똑같은 상처를 또 받게 되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었다. 그땐 정말 아물지 않을 상처로 평생 기억에 남을 것만 같다. 톰은 집사들이 이제라도 자신을 찾고 있다는 소식은 듣고 싶지 않다고 스스로 되뇌였다. 하지만 사실 톰의 속마음 깊은 곳에서는 아직까진 집사들이 자기를 찾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있었다. 계속 부정하면서도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었다.

집사들이 이제 내가 없다는 걸 눈치채고 날 찾고 있겠지?..
하지만 난 이미 그들에게 상처를 받았어. 나를 소중하게 여겼으면 내가 없어진 지 바로 알았어야 했는데.. 그들은 알아채지 못했어.
사실 난 늦게라도 집사들이 날 찾아주길 바라고 있어. 

톰의 마음속에서는 엄청난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속에서 요동치는 소용돌이를 가라 앉히고 결심했다.

아니야! 침울해지지 말자! 지금의 내가 있어야 할 곳은 그 집이 아닌 이세계라고!
그리고 새 보금자리가 되어줄 훌륭한 집사도 꼭 찾아내고 말 거야!! 그럼 배도 채웠으니 이제 다시 움직여볼까?

톰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길을 나섰다. 또다시 정처 없이 걸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조금 전 마주쳤던 길고양이가 이상하게 신경 쓰였다. 과거의 자신과 비슷한 처지라 신경이 쓰이는 건지, 익숙한 얼굴 때문인지는 톰도 알 수 없었다. 왜인지 톰은 마주쳤던 길고양이의 생김새를 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톰은 고양이의 생김새를 잊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생김새에 대해 떠올렸다. 왜 그런진 알 수 없었다. 톰은 그저 옛날의 자신을 보는 듯한 길고양이의 모습을 잊지 못했다. 톰은 이를 안타까움과 미련으로 머릿속에 남은 것이라 생각했다.

음... 아까 그 고양이 말이야... 어디서 본 얼굴인데...?

톰은 발밑에 흙을 차며 고민했다.

아까 그 고양이 왠지 모르게 익숙했어. 도대체 누구지?

톰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공터를 가로질러가고 있는 그때까지도 제리는 톰과 헤어진 거리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세계가 어떤 곳인지, 무엇이 있는 곳인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제리에겐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였다. 그런 곳에 아무런 계획 없이 무턱대고 가는 것은 제리가 좋아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곳에 톰이 혼자 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도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장의 지침과 배고픔에 톰을 떠나기는 했지만, 톰이 힘든 여정을 홀로 걸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제리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톰 혼자서 노을 너머 세계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혼자서는 많이 외롭고 지칠 텐데...
맞아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는 건 너무 위험해!!!
근데 그럼 톰에게도 위험한 여정이잖아..!
지금이라도 톰과 함께해야겠어... 둘이라면 괜찮을 거야.
톰 별일 없겠지..? 서두르자!!!

고민 끝에 톰과 함께 하기로 결심한 제리는 톰을 찾아 나섰다.

제리는 달려가는 와중에도 톰을 생각했다.

톰이 길고양이 생활을 하긴 했어도 집 고양이로 생활한지 벌써 몇 년이야.
빨리 찾자!

톰을 한참을 찾아 돌아다니던 중 공터에 서있는 톰이 제리의 눈에 들어왔다. 제리는 안도감을 느끼며 단숨에 톰에게 뛰어갔다. 하지만 정작 톰은 제리가 온 줄도 모르고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톰!

톰은 제리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제리는 자신이 온 것도 모른 채 생각에 빠진 톰에게 말을 걸었다.

톰, 무슨 일 있어?
왜 또 고민에 빠진 거야?

제리...!?? 어떻게 된 거야. 왜 돌아가지 않았어!??

톰은 제리가 자신에게 돌아온 것에 깜짝 놀랐다.

그냥 널 혼자 보낸 게 마음에 걸려서... 목적지가 어딘지 몰라도 혼자보단 함께하는 게 더 좋잖아!

톰은 제리의 말을 듣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제리와 헤어진 후 톰은 막연히 앞으론 제리를 만나기 힘들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시 제리를 만나고 나니 이전의 생각들이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제리와 영영 만나지 못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제리... 정말 고마워.. 넌 정말 내 하나뿐인 좋은 친구야.

헤헤 그렇게 말해주니 조금은 쑥스럽네. 우리 인연이 아주 깊긴 하지 친구야. 그보다 톰 무슨 일이야? 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톰은 천천히 소고기를 훔쳤던 이야기, 소고기를 훔쳐 달아난 곳에서 길고양이를 만났던 이야기 길고양이가 불쌍해 보여서 제 소고기를 조금 나눠줬던 이야기를 제리에게 하였다. 제리는 차분히 톰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톰은 이야기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그때 소고기를 나눠주었던 그 고양이가 묘하게 익숙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 말을 들은 제리는 저도 덩달아 고민을 하더니 말했다.

예전에 본 적이 있는 고양이인 게 아닐까?
길에서 다니던 시절에 친했던 고양이거나, 그 고양이의 가족이거나.
그 고양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말해 봐!

톰은 자신이 알고 있는 고양이가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톰은 웬만한 얼굴은 잘 기억하는 편이었다. 톰은 제리에게 만났던 길고양이의 생김새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털빛은 검은색과 하얀색이 섞여 있었어.
얼굴은 눈 주변만 검고 코 부분은 하얬어.
그리고... 늙고 지쳐 보였어.

톰의 설명을 들은 제리는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아, 하는 탄성을 뱉었다. 그러고는 톰에게 말했다.

혹시 잭 아니야?
우리 옛날에 다 같이 살 때 너한테 좀... 모질게 굴던.. 그 고양이 말이야.

제리의 말에 톰은 곰곰이 오래전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내 자신이 왜 기억하기 힘들었는지 깨달았다. 제리와 톰이 같이 살던 시절에도 그 둘은 종종 집사 몰래 밖으로 나오고는 했었다. 그때마다 자주 마주쳤던 길고양이의 이름이 '잭'이었다. 잭은 집고양이인 톰이 밖을 나돌아다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서 톰을 못살게 굴던 녀석이었다. 잭은 톰에게 이유 없이 시비를 걸기도 했고 싸움을 좋아하지 않던 톰이 이유 없이 잭에게 당하는 일이 매우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톰은 잭과의 관계를 좋게 만들고자 먹을 것을 가져다주기도 했었는데.... 매번 거절당했었다. 하지만 톰은 포기하지 않고 잭에게 다가가려고 했었다. 그러다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톰은 잭과의 관계에서 노력하는 것을 멈추었다. 그리고서 잭은 동네에서 종적을 감췄다. 톰은 아마도 감정이 좋지 않던 그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려고 했던 것 같다.

잭? 내가 알고 있는 잭?
그렇다기엔 너무 늙어 보였는데...
게다가 그 녀석 나를 처음 보는 것처럼 행동했어.
잭이라면 분명 나를 기억할 텐데 말이야.

톰은 자신의 기억 속의 잭과 길고양이를 비교해봤다. 톰의 기억 속의 잭은 엄청나게 무서운 눈빛으로 일대 거리를 장악했던 일명 짱 고양이였다. 하지만 아까 봤던 길고양이는 톰에게 구걸을 했고 감사 인사를 했다. 분명 잭이었다면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톰은 그런 잭이 체격도 왜소해지고 남 앞에서 불쌍한 모습을 보여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톰은 잭과 길고양이를 번갈아 생각해보면서 잭이 저렇게 변했다고 믿고 싶지 않았다. 그 고양이가 잭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측은함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 왜 그리 자신을 못살게 굴었는지, 억울함도 좀 들었다.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 톰에게 제리가 말했다.

그때 너 덩치랑 지금 덩치를 생각해봐.
나 같이 너랑 맨날 티격태격하던 사이가 아니면 몰라볼걸?

길고양이 시절 음식을 먹은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아 왜소했던 톰은 집사들을 만나 보기 좋게 살이 찐 참이었다. 톰은 제리의 말을 듣고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생각하며 제리의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옛날의 잭의 모습과 그 길고양이의 모습을 비교해봤을 때 둘의 모습이 너무 달라 톰은 혼란스러웠다.

물론 네 말도 맞아. 시간이 이렇게나 많이 지났으니 내가 몰라보는 게 어쩌면 당연할 거야...
그렇지만 내가 오늘 본 그 길고양이는 내가 알고 있던 잭과 달라도 너무 다른 걸? 
옛날의 잭이었다면 오늘 마주친 게 내가 아닌 다른 고양이였어도 분명 사나운 눈빛으로 제압하려 들었을 거야.
너도 잭의 성격은 잘 알잖아, 제리. 

톰은 길고양이의 남루한 모습을 떠올리며 그가 자신이 알고 있던 잭이라고 확신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제리의 생각은 톰과 달랐다. 제리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나는 잭 말고 얼굴에 그런 무늬를 가진 고양이를 본 적이 없어!
그 고양이는 분명 잭이 맞을거야.
근데... 잭이 그렇게 변했다고? 
대체... 잭에게 무슨일이 있었던거지?

잭은 다른 고양이와 달리 판다처럼 눈 주변에 검은색 무늬가 있다. 뿐만 아니라 잭은 얼굴에는 다른 고양이가 할퀴어서 생긴 흉터가 있다.

그런 얼굴을 가진 고양이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톰도 어느정도 의심이 가는 것은 사실이었다. 톰은 길고양이가 설마 잭일까 하는 의아함을 느끼는 것과 달리 제리는 잭이 걱정되었다. 그러나 잭이 맞든 아니든 어차피 다시 볼일 없을 것 같았기 때문에 톰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세계에 대한 계획이 더 급할 뿐이었다. 톰이 대화의 주제를 바꾸려던 찰나, 머릿속에 잭에 대한 궁금증뿐인 제리가 다리를 동동 구르며 말했다.

혹시 잭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우리 잭을 찾으러 가보자! 어차피 목적지도 정하지 않았잖아? 잭이 무슨 일을 겪었던 건지 너무 궁금해! 

시간이 밤이 되었기 때문에 위험한 인간들이 나올 시간이 되었다. 톰과 제리가 있는 현재 이 거리는 술집이 많은 거리로 유명하기 때문에 빨리 다른 곳으로 옮겨야만 했다. 낮에 보이던 인간들과는 다르게 밤에 다니는 사람들은 얼굴이 빨갛고 걸음걸이는 휘청거렸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도시의 밤에 무작정 돌아다녔다가 위험한 인간에게 걸리면 저녁에 개를 만났을 때보다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들은 개와 다르게 어떠한 행동을 할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에 애초에 피하는 것이 안전하다. 길고양이였던 톰 역시 이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톰은 더 경계하고 불안해하며 제리에게 말했다.

그렇지만 잭이 아니면 어떡해? 위험할 수도 있다고!
만약에 잭이 맞을지라도 분위기가 싸하고 느낌이 좋지 않아.

하지만 제리에게 톰의 말이 들릴 리 없었다. 톰은 그곳을 향해 무작정 달리려는 제리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제리는 이미 톰의 다리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간 뒤였다.

톰은 겁 없이 달려가는 제리가 걱정되었고, 또 왠지 모르게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불안해진 톰은 다시 한번 제리의 앞을 막아섰다. 제리는 그런 톰에게 말했다.

톰~ 내 성격 알잖아!! 난 궁금한 게 있으면 진짜 한숨도 못 잔다고!!

전에 제리는 고급 치즈의 맛이 궁금해 목숨을 걸고 사람이 많은 식당에 쳐들어갔던 적이 있다. 인간은 쥐를 더러운 존재라 생각하기 때문에 어디에 나타나던 쥐를 잡아 없애려고 한다. 그런데, 청결함이 생명인 식당에 쥐가 들어갔다니 얼마나 대담한 행동인가! 다행히 그 사건 이후 식당에서 일하는 레미라는 쥐를 만나게 되어 몸 고생하지 않고 라따뚜이 같은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을 수 있었다. 제리의 대담함 덕분에 톰도 덩달아 고급 채소들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톰도 같이 돌아다니곤 했지만 그렇게 위험한 곳에 들어가는 것은 톰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톰은 이러한 과거가 떠올라 제리가 이번에도 목숨을 걸고 대담한 행동을 할까 봐 걱정되었다.

제리!!! 거긴 너무 위허.. ㅁ.. 벌써 들어가버렸네...

초조하게 기다리던 톰은 몇 번이고 식당 안을 들여다봤지만 제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걸리지 말아야 할 텐데.. 빨리 좀 나와라 제발..!

얼마나 지났을까, 제리는 무사히 치즈를 한 덩이 가져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제리는 식당 아주머니가 던지는 슬리퍼에 맞을 뻔 하였고, 접시가 쌓여있는 선반을 달리다가 여러 장의 접시를 떨어뜨리기도 하였다. 심지어 끓고 있는 냄비에 빠져 통채로 삶아질 뻔 하는 등 수차례의 위험한 순간을 맞닥뜨렸다. 지금 제리가 물고있는 치즈는 이러한 여러가지 고비를 겪고 얻게 된 포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제리는 톰이 자신에게 매우 용감한 행동이었다고 칭찬해주길 바랬다.

제리를 기다리며 계속 마음 졸이고 있던 톰은 제리를 보자마자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물론 제리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온 화였지만, 감정이 격해져있던 둘은 서로에게 모진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맛있는 치즈보다는 동료가 소중했던 톰, 맛있는 음식을 톰과 함께 먹고 싶었던 제리의 마음이 아주 살짝 어긋났을 뿐이었다.

제리 말도 없이 갑자기 뛰어가면 어떡해! 걱정했잖아..
음식도 중요하지만 언제나 너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라고!

톰 나의 실력을 못 믿는 거야? 이 도망의 대가를 잊은 거냐구.
물론 이번에는 꼬리가 잘릴뻔한 위험이 있었지만 그래도 무사히 나왔잖아. 
멀쩡하게 돌아왔으면 되었지.
잔소리 좀 그만해!

잔소리가 아니라 걱정이야! 다음부턴 무모하게 행동하지마 걱정돼.

알겠어 톰. 다음부턴 조심히 행동할게...

제리는 톰의 화를 풀기 위해 식당에서 가져온 자신의 몸보다 큰 치즈를 보여주었다.

톰, 그래도 이 치즈를 봐, 너도 잭한테 밥을 나누어줘서 많이는 못 먹었지?

톰은 못이기는 척 치즈 냄새를 맡아보았다. 톰에게 익숙한, 고소하고 꾸덕한 치즈향이 코를 간지럽혔다.

'아! 예전에 자주 먹던 치즈 향이다. 언제 맡아도 냄새 하나는 정말 좋다니까..'

톰은 아직도 화나 있지만, 그윽한 치즈의 냄새가 톰의 화를 누그러뜨렸다.

흥, 그래 치즈 냄새 한번 좋네, 조금만 맛만 볼 게

맛있으니까... (오물오물) 용서해줄게!

제리는 톰의 화가 풀린 것 같아 기뻐한다.

그래, 톰 함께 그윽한 치즈나 먹자고!

톰은 치즈를 조금 먹고 나서 제리를 보고 지난 일들을 돌아보았다.

과거를 회상하며 그때도 톰은 제리가 무모하다고 생각하였다. 톰은 자신보다 용감하고 때로는 나설 줄도 아는 제리의 성격을 물론 잘 알고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별로 찾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톰은 냉정하기만 한 고양이는 아니다. 톰은 여러 가지 생각과 사색이 많아서 겉보기에 조금 차갑고 다가가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알고 보면, 누구보다 정 많고 여린 고양이다. 오랜만에 만난 제리도 물론이고, 밥을 챙겨주던 사람들의 얼굴, 잠깐 만난 (잭으로 추정되는) 길고양이도 쉽사리 지나치지 못하는 모습들이 그가 어떤 고양이인지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험한 길고양이 생활로 인해 그 당시 인간에 대한 적대감은 어쩔 수 없었지만, 같은 종족만큼은 누구 보다 아꼈다. 그래서 그에게도 살갑게 굴었던 것인데... 과거에 톰이 잭에게 아무리 다가가려고 해도, 잭은 모질고 차갑게 톰에게 대했었다.

맘 편한 집고양이 주제에, 왜 자꾸 귀찮게 구는지 모르겠네?

갑자기 잭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마음 편한 집고양이... 맞다. 톰이 동료들을 버리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다른 길고양이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잘 알고 있다.

'배신자'겠지...

만약 그 고양이가 잭이어도 자신은 물론, 자신과 함께 다니는 제리에게 살갑게 대하지 않을 것 같았다. 잭은 그저 집고양이의 삶을 선택한 톰이 싫었던 것이겠지만 몇몇 길고양이들은 그 이상으로 톰을 미워했다. 아마 질투의 감정이었을 것이다. 거리의 삶과는 대칭점에 있는 편안하고 안락한 삶. 톰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길고양이 생활을 하던 동료들에게 톰의 '전향'은 실망과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조금 전에 집사들로부터 '배신감'을 느낀 톰이기에 그들의 원망을 더욱 잘 알 것만 같았다. 집고양이 생활의 행복으로 다른 고양이들의 시선을 잊으며 지내온 것이지만 이젠 집고양이조차 아니게 되었다. 흰 색도, 검은색도 아닌 회색. 이도 저도 아닌 신세가 되어버렸다. 톰은 이런 상황에서 잭을 만난다는 것이 두려웠다. 톰은 배신자 신세임에도 끝까지 곁에 남아있는 제리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그 당시에 톰과 같이 지냈던 다른 길고양이들이 직접적으로 톰한테 배신자라고 얘기하진 않았다. 하지만 톰이 떠나고 나서 가끔 밖을 나올 때 톰을 반갑게 맞이해준 것은 제리뿐이었다. 그렇기에 제리는 톰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였다. 그래서 톰은 제리가 위험한 상황에 놓이는 것이 너무 싫었다.

제리, 그만 가. 너한테 위험할 수 있어!

하지만 제리는 이런 톰의 마음도 모른 채 잔뜩 신이 나서 달리고 있었다.

제리, 이번은 그냥 넘어가자 그리고 시간도 너무 늦었어. 차라리 내일 밝을 때 가보자.

톰은 걱정스러워하며 얘기했다. 하지만, 제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아니, 난 갈 거야! 그럼 넌 그냥 거기 있어. 나 혼자 갔다 올게!!

제리가 이토록 잭을 만나고 싶어 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제리의 첫사랑이지만 갑작스럽게 행방불명된 하리 때문이었다. 하리는 제리가 톰과 한집에 살던 시절, 그 집 근처를 배회하던 쥐이다. 제리보다 조금 어두운 갈색 털을 가졌고, 오른쪽 눈 밑의 까만 점이 매력적이었다. 거기에 제리보다 덩치도 커 제리는 항상 하리를 동경하고, 좋아했다.

그녀를 사랑한 이유는 아름다운 외모 때문만이라기보다는 아름다운 성품 때문이었다. 제리는 다른 쥐들에 비해서 유난히 체격이 작고 사람들의 눈에 띄는 밝은 갈색 털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항상 맛있는 음식을 무리와 함께 훔쳐 먹으러 가다가도 밝은 털 색 때문에 사람들에게 들키기 일쑤였다.

나는 왜 이렇게 작고, 다른 쥐들처럼 평범하지 못한 걸까

슬퍼하는 제리에게 하리는 늘 말했다.

그래, 넌 평범하지 않아.
특별하게 빛나는 생쥐이기 때문에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하리가 행방불명되기 전날마저도, 하리는 제리에게 말했다.

제리, 넌 정말 좋은 아이야. 언제나 자신감을 잃지 마!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하리 너한테 그런 말을 들어서 너무 기뻐.

그저 하리에게 칭찬을 받았다는 사실에, 그게 마지막 인사일 거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한 제리였다. 사실, 하리는 과거 잭과 꽤 가까운 사이였다. 둘은 함께 숲으로 놀러다니기도 했고, 맛있는 것을 나눠 먹기도 했다. 제리 역시 그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들 사이에 끼어드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물론 하리가 갑작스럽게 떠난 이후에는 잭과의 연락도 끊어진 것 같았다. 그러나 제리는 지난 몇 년 사이에 하리가 다시 돌아왔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잭이 발이 넓어서 주변 친구들에 대한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믿었고, 만약 그것이 확실하지 않아도 제리는 방법이 없었다. 너무나 그립고 아직도 사랑하기 때문이다. 제리는 속으로 다짐했다.

이번에는 꼭 찾고 말 거야.. 그리고 너를 찾는 날 묻겠어. 왜 그렇게 떠나야 했는지...

하리에 대한 제리의 감정 중에는 사랑하는 마음과 그리움도 있었지만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자신을 떠나간 하리에 대한 원망 또한 존재했다. 제리는 겨우 찾은 실마리일 수도 있는 잭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복잡한 마음을 갈무리했다. 그러고선 톰을 두고 혼자 달리기 시작했다. 톰은 제리를 말릴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휴, 됐어... 내가 제리를 어떻게 말리겠어...

톰은 사실 밤에 위험한 인간들이 너무 많아서, 자신의 등에 제리를 태우고 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얘기하기도 전에 제리는 이미 저 멀리에서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었다.

제리 제발 같이 좀 가자!!

결국 톰은 한참 앞에 달려가는 제리를 따라가느라 바빴다.

밤은 더더욱 깊어가고, 불길한 적막이 맴돌았다. 하루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기도 전에, 마치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이.. 그렇게 십 분쯤 달렸을까? 바쁘게 따라가다 앞을 보니 제리가 멈춰 서 있었다. 톰과 제리는 아까 잭을 만난 그 장소에 도착했다.

톰! 너 잭 어디서 봤어? 여기쯤에서 본 거 맞지??

어.. 아까 여기서 있었던 일이 맞기는 한데...
아이참, 그 고양이 잭이 아닌 것 같다니까~?
그냥 우리 돌아가자...

주변엔 아무것도 없었다. 톰은 진심으로 무서웠다. 괜히 모험을 떠나자고 제리를 부추긴 것만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집사한테 돌아갈 걸. 톰이 마음속으로 자책하고 있을 때 즈음, 멀리서 골목을 살피던 제리가 톰을 향해 소리쳤다.

톰! 여기로 와볼래?! 이거 잭이 남긴 흔적 아니야? 

골목의 한쪽에는 잭의 것으로 추정되는 털들이 날려 있었다. 털에서는 아직 잭의 냄새가 남아있어 잘만 하면 냄새로 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톰, 이 털의 냄새를 따라가면 우리 다시 잭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잭을 다시 만난다면, 너무 반가울 것 같아!

제리가 신이 나서 말했다.

음.. 난 글쎄.... 저기, 제리 난...

털의 잔해는 톰의 공포감을 더욱 끌어올렸다. 혹시 싸움이라도 있었던 건 아닐까? 톰은 불길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잭이면 좋겠지만, 아닐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톰이 제리가 잭을 만나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이유는 다른 이유가 아니라 첫사랑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첫사랑과의 일로 톰은 잭과 친해지려 노력했던 것을 멈추고 잭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잭은 톰이 가장 사랑했던 고양이인 미야를 뺏은 장본인이다.

길고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고 하얀 털, 아름다운 외모, 분위기까지 고급스러웠던 미야는 톰이 지내던 동네에서 안 좋아하는 고양이가 없었다. 도저히 길고양이로 보이지 않는 탓에 부잣집에서 키우다가 유기한 유기묘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톰 역시 미야를 처음 본 순간 한눈에 반하고 말았다. 그는 먹이를 나눠주며 미야에게 호감을 표현했었다. 하지만 인기가 많던 미야는 동네 고양이들에게 받은 먹이가 잔뜩 쌓여있었다. 항상 많은 고양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미야를 보면서 자신이 존재감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톰은 미야가 너무나 좋고 같이 있으면 행복했다. 톰은 다른 고양이들보다 멋져 보이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꽃단장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미야와 친해진 다음에 꼭 고백을 할 것이라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도도한 하얀 고양이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톰이 무슨 말을 해도 미야의 반응은 시큰둥하였다. 그렇게 톰 혼자 애태우고 있던 중, 잭이 미야에게 고백을 한 것이다.

그 장면은 정말 우연히 보게 되었다. 먹이 냄새를 찾아 골목을 헤매던 도중 톰은 잭과 미야가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 반갑게 다가가려다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몸을 숨기고 지켜보는데... 톰에게는 쉽게 마음을 주지 않았던 도도한 고양이는 잭의 고백에 화답했다. 자신이 몇 날 며칠이고 호감을 표현해도 넘어오지 않던 콧대 높은 고양이가 잭에게는 너무도 쉽게 넘어갔다. 자신이 미야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잭이...미야에게 관심이 없다던 잭이...미야와 이어지는 모습이란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것이었다. 톰은 상실감과 배신감에 큰 충격을 받았다. 더 이상 이 광경을 지켜볼 수 없던 톰은 쓸쓸히 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러고 보니.. 미야는 잘 지내던가..

한순간에 미야가 그리워졌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던 고양이였는데, 과연 지금은 행복할까? 톰은 추억에 존재하는 아리따운 고양이에게 전해지지도 않을 질문을 던진다.

만약 그 고양이가 정말 잭이라면... 
그리고 어떤 봉변을 당해 저런 꼴이 된거라면....
설마 미야에게도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

톰은 이루어지지 못한 짝사랑의 상대를 잠시 걱정했다.

아니야 그럴리는 없을거야...
미야는 잘 살고 있겠지...

톰의 생각은 다시 잭에게로 돌아왔다. 톰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잭이 톰의 짝사랑을 망쳤다. 이건 절대로 변하지 않을 사실이었고, 그날 톰이 받았던 상처는 절대 지워지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서 톰은 제리가 잭을 찾으러 가는 것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톰도 잭이 보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저 아주 조금이라도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톰은 지금 당장 잭과 마주했을 때 그를 마냥 반길 자신이 없었다. 제리는 톰의 시큰둥한 태도에 아쉬움을 느꼈다.

톰. 그래도 잭은 우리의 친구였지 않아? 
난 잭을 보러 갈 거야. 너도 뒤따라와!

제리의 태도에 톰은 못마땅해하였다. 즉흥적이고 적극적인 제리는 톰의 말을 듣지 않고 이내 다시 잭을 찾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톰은 제리의 뒤를 느릿느릿 따라다녔다. 불현듯 어떤 불길한 예감이 톰의 머리를 스쳤다. 톰은 앞질러 가던 제리를 단숨에 따라잡아 몸으로 그를 막았다.

톰! 왜 나를 막는 거야?

제리가 지나가려고 하는 어두운 골목길은 버려진 음식물 쓰레기를 차지하기 위해 밤이 되면 온갖 동물이 나오는 곳이었다. 물론 더 많은 음식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도 일어났다. 그래서 제리같이 무리가 없는 쥐는 다른 쥐들 무리에게 공격받거나 고양이들의 표적이 될 수 있었다. 톰은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지만, 그의 직감이 지금 여기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제리!!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 느낌이 너무 안좋아... 그냥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제리..
오늘만 날이 아니잖아. 내일 낮에 잭을 찾아도 될 거야..

톰은 설득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는 거잖아! 오늘이 아니면 못 볼 수도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톰, 난 지금 가고 싶어. 아니, 지금 갈거야!

제리는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고, 왜 톰이 자신을 막아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제리 미안해...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톰은 제리를 물고 재빠르게 그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이거 놔! 왜 그러는 건데? 넌 잭이 보고 싶지도 않아?

톰과 잭 사이에 있었던 일을 모르는 제리는 톰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잭이 톰에게 모질게 굴었던 건 맞지만, 그럼에도 톰은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 적어도 제리가 보기에는 그랬다. 어느 순간 톰이 잭에게 다가가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추측을 해보았지만, 제리는 오리무중이었다.

난 별로 보고 싶지 않아... 일단 그거보다는 지금 여기는 너무 위험해 보여. 
차라리 해 뜨면 다시 오자. 응?

분명 주위가 어둡고 삭막한 건 맞지만 톰의 속내에는 다른 사정이 있어 보였다. 톰의 흔들리는 동공이 그 것을 증명했다. 제리는 직접적으로 물어볼까 고민도 했지만 톰이 자신에게 마음을 털어놓지 않을 것을 눈치챘다. 그래서 더더욱 잭을 만나보고 싶었다.

정 못마땅하면 너 먼저 이세계에 가 있어. 난 먼저 잭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따라갈게.

제리는 냉랭한 말투로 톰에게 말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잭을 찾기 시작했다.

제리!!
하... 이젠 나도 몰라 네 맘대로 해.

제리와 헤어진 톰은 제리가 걱정되면서도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생각에 그냥 돌아섰다. 톰은 과거의 잭과 있었던 아픔을 굳이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런 자신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제리가 원망스럽기도, 제리에게 솔직히 털어놓을 수 없어 미안하기도 하였다.

그래... 나도 이제 제리 걱정은 그만두고 내 갈 길이나 가야겠다..

이제 어느 쪽으로 가야 하나 고민하며 터벅터벅 걸어간 지 몇 분 안 됐을 때, 꽤 떨어진 거리에서 쥐의 비명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한 밤이라 그런지 그 비명은 더욱 선명하고 날카롭게 느껴졌다.

...제리?!!?!
설마 제리 비명소리는 아니겠지?
아니야 다른 쥐일 거야.. 이 근방엔 쥐가 많으니까...!
아니 근데 제리라면 어떡하지? 굶주린 고양이한테 잡히기라도 한 거라면..?
그래, 그렇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 우린 이미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으니까. 제리 걱정은 관두자.

톰은 필사적으로 다른 재미있는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다. 담벼락을 오르려다 벽에 머리를 박은 기억, 스스로 꼬리를 밟고 넘어졌던 기억... 하지만 방금 들렸던 비명소리가 자꾸만 머리 속을 맴돌았다.

아... 내가 즐거웠던 추억이 모두 제리와 함께였기 때문이구나...

고개를 저으며 갈 길을 가던 톰은 결국 몇 발자국 가지 못하고 다시 제리와 헤어졌던 골목을 향해 뛰어갔다.

제리!!!!

톰이 제리와 헤어진 곳에 도착해 제리를 크게 불렀다.

제리! 대답해봐!! 괜찮아?

톰은 제리 걱정에 소리를 지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제리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톰은 자신이 들은 비명이 제리의 비명이 아님에 안도하고 땀을 닦았다. 톰은 제리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제리? 이 근처에서 쥐의 비명이 들리길래 걱정돼서 달려왔어...

다행히도 제리는 다른 동물로부터 습격받지는 않아 보였지만, 엄청난 것을 본 듯 몸이 빳빳하게 굳어있었다. 제리의 흔들리는 눈동자는 골목길 구석, 그림자가 가장 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짙은 그림자들은 구석에서 꿈틀대며 서로 움직이고 있었고, 그것들은 바로 수백 마리의 바퀴벌레의 움직임이었다. 톰 또한 이런 광경은 처음 보기에 동그란 눈으로 바퀴벌레들을 조용히 쳐다보고 있었다. 과거에는 마치 바퀴벌레를 장난감 취급하던 톰이었지만 거대한 떼를 이룬 벌레들은 톰에게도 여간 당황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계속해서 이런 침묵이 지속되자, 바퀴벌레 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한 바퀴벌레가 제리의 앞으로 와 말을 걸었다.

우린 새 보금자리를 위해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고 있어... 우리를 먹지 않고 도와준다면 너희가 음식을 찾는 것을 도와줄게!

제리는 징그럽게 생긴 바퀴벌레를 싫어하였기에 굳어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무 말도 못하는 제리를 대신하여 톰이 대답하였다.

우린 먹을걸 찾고 있지 않아.

톰의 말이 끝나자 제리는 잭을 찾아야 된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바퀴벌레 대장에게 말했다.

맞아... 대신 우린 찾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있어!

고양이라... 이 주변에 악명 높은 고양이 무리가 있긴 한데,
그놈들은 안 찾는 게 좋아 보이는데...
워낙 무리가 커서 어두운 골목에 있는 사나운 고양이는 그 무리라고 보면 돼.
그놈들 중 수장이 아마 '잭'이라고 불리던 것 같던데..?
하지만 그 자식은 진짜로 조심해... 누구도 그에게 도전하지 않아...

잭? 그 고양이 이름 잭이 확실해?

과거의 날렵하고 차가웠던 잭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아까 고기를 나눠주었던 길고양이는 분명 힘없고 왜소해보였다. 과거의 잭이 주었던 위압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제리와 톰은 바퀴벌레에게 되물었다.

응. 지나가는 길고양이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전부 잭의 무리라고 달아나더라고..

이 말을 들은 제리는 곧바로 톰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서 톰. 잭을 찾으러 갈 거야?

톰은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까 본 불쌍한 길고양이가 잭이었다면 그가 이 구역의 대장일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제리, 뭔가 이상하지 않아? 아까 내가 본 고양이는 잭이어도 이 고양이 무리의 두목인 잭은 우리가 아는 잭이 아닐 수도 있어. 
아까 본 불쌍하고 초라한 그 녀석이 무리를 이끌고 이 구역을 장악했다는 게 말이 안 돼...
이름만 같은 녀석이 아닐까?

톰의 의심에도 제리는 그 녀석이 분명 아는 잭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톰은 무리가 있다는 이야기에 제리를 막아서고 싶었지만, 제리의 눈빛을 보면 제리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또한 제리를 설득시킬만한 말이 더는 떠오르지 않았고, 제리를 혼자 보내기엔 방금처럼 불안한 상황이 계속 생길 것 같아서 결국 제리와 함께 다니기로 했다. 톰은 한숨을 쉰 뒤, 같이 찾아보자고 답했다.

제리는 잭의 단서를 제공해 준 바퀴벌레를 더 이상 싫어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바퀴벌레들에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우린 그 잭이라는 고양이를 찾고 있어 혹시 어디로 가면 그를 만날 수 있을까?

제리가 말을 마치자 바퀴벌레 무리들이 수근거렸고 대장은 놀라며 말했다.

정말 그 무리에게 갈 생각이야? 그들은 이 근방에서 흉포한 패거리로 소문이 나 있어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우리도 그와 만나는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괜찮아 우리는 그와 옛 친구 사이거든 오랜만에 인사나 할까 해서.

잭과 옛 친구 사이라고? 
너희처럼 곱게 생긴 애들이 그 무시무시한 잭과 아는 사이란 말이야?
참 희한한 인연이로군...
어떤 사연인진 모르겠지만, 지금의 잭을 생각하면 재회는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니야.
다시 한번 얘기하는데 그 고양이는 내가 본 고양이 중에 제일 자비 없고 무서운 고양이였어.
다신 만나기도 싫어.

바퀴벌레의 만류에도 제리는 잭과의 재회를 주저하지 않았다. 주저하기보다는 오히려 기대하는 눈치였다.

우리는 괜찮을 거야. 잭을 꼭 만나야겠어!

음 일단 우리 무리가 살 수 있는 따뜻한 거처를 알려주면 우리도 도와주도록 하지..

제리는 문뜩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는지 뒤돌아 혼자 웃음을 참고 있었다.

여기서 좀 멀기는 하지만, 완벽한 곳을 알고 있어! 바로 톰이 살았었던 집이야!

제리는 여전히 우울해 하는 톰을 기분 좋게 해주고 싶었다. 톰은 제리의 생각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버린 가족들에게 할 수 있는 복수라고 생각했고, 그들에게 집 주소를 알려주었다. 가족들이 벌레라면 기겁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두 자매들은 작은 벌레조차 못 잡을 정도로 무서워하였다. 톰은 그들이 벌레를 보고 놀랄까 봐 몰래 벌레를 삼킨 적도 있었다. 안심하고 침대에서 편히 잠든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 자신이 가족들을 지켜줬다는 뿌듯함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지금의 톰에게는 가족들을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그들에 대한 서운함과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이다.

고맙군. 덕분에 이번 겨울을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그럼 우리가 잭을 찾는 것을 도와주지..

얘들아, 가볼까?

바퀴벌레 대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수십 마리의 바퀴벌레가 더듬이를 허공에 휘젓기 시작했고, 그들은 일렬로 어디론가 향했다.

톰 저들을 따라가보자! 분명 잭에 대한 흔적을 찾아낼 수 있을 거야!

저기.. 잠시만 제리!! 
같이 가!!

벌써 저 앞으로 달려 나간 제리를 톰은 마지못해 뒤쫓기 시작했다. 바퀴벌레들은 뭐든지 잘 먹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려 고양이 털까지 먹을 수 있는지는 몰랐다. 고양이 털을 잘 먹던 그들은 고양이 털의 냄새를 잘 알고 있었고, 잭의 것으로 추정되는 털을 냄새로 찾으면 그중 일부는 먹이로 삼았다. 그리고 순간 바퀴벌레가 안내하던 길을 멈췄다.

너희들 덕에 거처와 먹이를 손쉽게 얻었다! 여기까지 모은 털들로 충분히 많은 날을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군!
저장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앞으로의 털은 못 가져갈 듯하니 일단 여기까지만 안내할게.
미안하지만, 앞으로는 너희들이 스스로 찾아가 봐.
대신 털들을 쉽게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줄게.
사는 곳 때문인지는 몰라도 잭의 털은 다른 것과 다르게 고약한 냄새가 나고, 자세히 보면 더러운 물질들이 유난히 묻어있지.
그럼, 행운을 빌어.

그렇게 말하고 바퀴벌레 일행은 톰이 알려준 집으로 향했다.

제리, 우리가 찾을 수 있을까??

물론이지 톰! 내가 아까 바퀴벌레들이 줍던 털과 비슷한 걸 주워놨어! 이거랑 비슷한 걸 찾아서 따라가면 될 거야.

제리가 들고 있는 털은 바퀴벌레들이 설명해준 모습과 똑같았다. 고약한 냄새가 났고, 더러운 물질들이 유난히 묻어있었다. 특히 그 고약한 냄새는 추적을 더 쉽게 만들었다.

끝까지 같이 가줄 줄 알았는데... 뭔가 속은 것 같아...

제리는 괜히 바퀴벌레 일행이 사라진 곳을 째려보았다. 톰도 제리를 따라 시선을 옮긴 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순간, 톰은 바퀴벌레 일행에게 자신이 살던 집의 주소를 알려준 것을 크게 후회했다. 아무리 그들이 밉다지만, 함께 지냈던 지난 시간이 떠올랐다. 처음 그 집에 들어간 날부터, 많은 일을 겪으며 즐겁게 보낸 날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자신을 보며 행복하다는 듯이 웃던 그들이, 바퀴벌레 무리를 보고 절망에 차며 소스라치게 놀랄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지금이라도 바퀴벌레 일행을 붙잡을까 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설마 큰일이라도 나겠어..?

혼자 생각하는 톰이었다. 제리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을 했다.

그러게... 뭐, 그래도 어쩌겠어! 우린 잘 찾아갈 수 있을 거야!

맞아! 우리도 얼른 출발하자!

제리, 우리가 찾을 수 있을까??

물론이지 톰! 내가 아까 바퀴벌레들이 줍던 털과 비슷한 걸 주워놨어! 이거랑 비슷한 걸 찾아서 따라가면 될 거야.

제리가 들고 있는 털은 바퀴벌레들이 설명해 준 모습과 똑같았다. 고약한 냄새가 났고, 더러운 물질들이 유난히 묻어있었다. 특히 그 고약한 냄새는 추적을 더 쉽게 만들었다.

톰과 제리는 바퀴벌레 일행이 알려준 단서를 가지고 고양이 털을 찾아가며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편, 바퀴벌레 무리는 그들만이 알고 있는 하수구 길을 이용하여 톰의 집에 다다랐다. 그들은 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집 안 구석구석 숨었다. 워낙에 민첩하고 빠른 몸놀림을 가지고 있는 바퀴벌레 집단이었기에 인간의 눈에 쉽게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하여 버렸다. 바로, 고양이의 털을 나르던 바퀴벌레가 발을 헛디뎌 털을 모두 떨어뜨려 버린 것이다! 심지어 바람이 불고 있던 터라 털이 여기저기로 흩어지고 있었다. 당황한 바퀴벌레 무리는 털을 주우려고 하였으나, 인기척이 느껴지자 줍지도 못하고 재빨리 숨어버렸다. 이 집의 막내딸이었다. 바퀴벌레들은 고양이의 털을 보고 있는 딸을 관찰했다.

어? 여기 떨어져 있는 이 털뭉치들은 뭐지?
톰이 왔다갔나?
하지만 톰의 털과는 색깔이 다른 것 같은데...

톰이 계속 보이지 않아서 막내는 걱정하고 있었다. 종종 옷장이나 서랍장 속에 들어가 한참 있다 나와 놀래키긴했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은 처음이었다. 땅바닥에 어울리지 않게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고양이의 털을 보더니 자연스레 톰이 생각날 수밖에 없었다. 막내딸은 바닥의 털을 주워 자세히 관찰하였다. 털은 언뜻 보면 검은색과 회색이 섞인 톰의 털과 비슷해 보일 정도로 비슷한 색이었다. 그러나 무언가 다르다는 걸 막내는 느낄 수 있었다. 그 누구보다 좋아하던 고양이였으니 말이다. 막내는 최근 들어 바쁘다는 핑계로 톰에게 소홀했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막내는 떨리는 손으로 폰을 꺼내 들어 톰과 찍은 영상들을 돌려보았다.

아 톰, 뭐하는 거야. 옷에 다 묻었잖아...

영상 끝에는 항상 이런 짜증 섞인 막내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막내는 사람과 달리 조건 없이 자신을 사랑해 주는 톰을 사랑했다. 그러나 영상은 막내가 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학대였음을 반증하고 있었다. 톰을 감정 쓰레기통 취급했음에도 불구하고 늘 막내가 부르면 사랑 가득한 눈으로 쳐다봐주는 영상 속 톰의 모습에 막내의 가슴은 시리게 아려왔다.

톰... 어딨는 거야....

막내의 눈가에 눈물이 촉촉하게 맺혔다.

갑자기 어딜 간 건지, 어디에서 굶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투성이였다. 심지어 톰이 잠시 산책을 나갔다가 차에 치인 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집에 다른 고양이 털이 왜 있는 거지?  
언니! 이리로 와서 이것 좀 봐봐.

막내는 불현듯 낯선 고양이 털에 이질감을 느꼈다.

그러게, 어떻게 다른 고양이 털이 집에 들어온 거지?   
창문에서 들어온 건가?

막내와 언니는 창문 쪽을 보았다. 살짝 열린 창문에는 구멍 뚫린 방충망이 보였다.

어? 오늘 창문 열고 나갔나?  

조금 열려있는 창문을 보고 같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두 사람은 눈을 마주치고 소리쳤다.

톰이 저기로 나갔나 봐!  
어떡하지?

두 아이의 소리를 듣고 다가온 엄마가 말했다.

얘들아, 무슨 일이니? 이제 잘 시간이니 얼른 방에 들어가렴.

엄마, 톰이 안 보여요. 자기 전에 톰이랑 놀려고 집안 곳곳 살펴봤는데 없어요. 

톰이 없어졌다고? 몇 시간 전에 분명 현관에서 어떤 상자 안에 있길래 집에 들어오라고 했는데..
너희들은 어서 자. 멀리 가지 않았을 테니 금방 돌아올 거야.

톰에게 위험한 일이 생기면 어떡해요!

막내는 톰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거의 울먹거리며 말했다.

걱정 마, 집에서 주는 밥만 먹어오던 고양이가 밖에 나가서 뭘 할 수 있겠니.
배가 고파서라도 톰은 금방 돌아올 거야. 너희들은 어서 자러 들어가.
톰이 내일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엄마가 직접 찾으러 갈게

무심한 엄마의 말에 두 자매는 속이 상했다. 톰이 이렇게까지 눈에서 보이지 않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과 공기같이 항상 곁에 있는 존재는 그것이 없을 때야 그 소중함을 깨닫듯이, 두 자매는 조금씩 톰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껴가고 있었다. 항상 옆에 있던 존재였던 톰이 없는 집의 분위기는 어쩐지 썰렁하고 어딘가 부족했다.

두 자매는 어떻게든 톰을 당장 찾으러 나가고 싶었다. 그동안 항상 곁에 있어서 느끼지 못했지만, 그들에게 톰의 빈자리는 아주 크게 느껴졌다. 하지만 완강한 엄마의 태도에 결국 방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결국 그렇게 누워도, 잠은 오지 않고 톰의 행방에 대한 불안함 뿐이었다. 둘은 거리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을 톰을 생각하며, 어둑어둑한 창문 바깥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톰 어서 돌아와...

두 자매는 손을 모아 기도했다.

한편, 바퀴벌레들은 톰을 걱정하는 막내를 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주인이 톰을 걱정한다는 것을 알려줘야 할까?

왜 이제 와서 톰을 찾는 거야?
톰은 이미 이 집을 떠났는걸...

그래도 톰에게 알려야 하지 않을까? 집사들이 자기를 그리워 하고 있다고!
바퀴벌레들끼리 협력하면 톰을 따라잡는 것은 금방일 텐데!

톰에게 알리자는 의견이 많아지자 다급해진 한 바퀴벌레가 소리쳤다.

안돼!!!
톰에게 알리면 우리는 또다시 다른 거처를 찾아야 해.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찾은 따뜻한 집인데 난 포기 못 해!

하지만 톰은 이런 상황도 모르고 떠나고 있는데, 나중에 알면 분명히 슬퍼할 거야...

바퀴벌레들이 자신의 의견을 계속 말해보았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대장이 입을 열었다.

아.. 조금 마음이 아파지는걸?
막내가 톰을 많이 그리워하는 것 같지?

네... 아무래도 그래 보이네요.
저희가 다시 가서 톰에게 이 소식을 알려줘야 할까요?

잠깐 고민에 빠졌던 바퀴벌레 대장은 이내 대답했다.

우리는 오늘 모은 털로 한동안 먹고 지낼 수 있으니 다시 새로운 거처를 찾기만 하면 돼.
우리에게 따뜻한 거처를 알려준 톰을 배신할 수는 없지. 
너희도 가족이 있어서 알잖아. 같이 살던 가족이 한순간에 없어져 버렸다고 생각해 봐..
정말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지.
당장 톰에게 가족이 찾고 있다는 소식을 꼭 전하기로 한다. 이의 없지?

하지만 대장, 우리 털들을 방금 전에 다 떨어뜨렸는데요?

생각해보니 그러네? 그럼 어떡하면 좋을까??

대장! 저에게 좋은 생각이 있어요!
우리가 톰에게 가서 이 소식을 알려주는 대신, 가끔씩 먹을 것을 가져다 달라고 하면 어떨까요?

그것도 괜찮은 방법인 것 같네! 우리가 수가 많긴 하지만, 먹는 양은 그리 많지 않으니 괜찮을 거야!
톰에게 어서 이 소식을 알리러 가자 !

결국 바퀴벌레들은 톰의 행방을 찾아 집을 떠났다. 톰에게 소식을 전할 생각에 바퀴벌레들은 발걸음이 빨라졌다.

톰이 분명 좋아하겠지 ? 

아마 반가워할 거야 ! 가족들을 그리워하고 있다면 말이지.. 

바퀴벌레 무리는 톰을 찾아 빠르게 이동한다. 얼마 가지 않아 근처에서 톰의 냄새가 났고 반가운 나머지 무리 중 하나가 톰을 부르려고 하는 순간,

토..읍읍!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대장이 빠르게 그의 입을 막고 함께 몸을 숨겼다.

느낌이 좋지 않다. 여긴 잭의 무리가 자주 출몰하는 곳이잖아.
일단 모두 몸을 숨겨! 잭한테 들켜서 좋을 게 하나도 없어.

바퀴벌레 무리는 빠르게 샤샤샥- 소리를 내며 몸을 숨겼다. 그리고 톰과 제리가 점점 어두운 곳을 향하는 것을 지켜보며 숨을 죽이고 그들을 따라갔다. 위험을 감지한 그들은 잭을 피해서 천천히 톰에게 가고 있었다.

갑자기 톰과 제리의 일행이 멈춰서 있었다.

무슨 일이지?

서열의 가장 끝인 막내 바퀴벌레가 흘끗 쳐다보았다.

대장! 저기에 톰하고 제리가 다른 고양이들하고 시비가 붙은 것 같아요!

바로 제리를 위협하는 다른 고양이들에게 톰이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그 시각, 바퀴벌레 일행이 건네준 털에서 나는 고약한 악취를 따라 잭의 흔적을 찾아가고 있던 톰과 제리는 저 멀리서 안갯속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끼고 재빨리 몸을 숨겼다. 안개를 걷고 성큼성큼 모습을 드러낸 그의 모습은 매우 위협적이었다. 거대한 몸집과 잔뜩 날이 서 있는 발톱은 그렇게 용맹하던 제리도 벌벌 떨게 했다. 그의 등 뒤로 6마리의 고양이가 따라 등장했고, 그 사이에는 톰의 첫사랑 하리가 그 누구보다 슬픈 얼굴로 고개를 떨군 채 있었다. 하지만 무리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위협적인 그는 잭이 아니었다.

저건 누구지? 

바퀴벌레 무리 중 하나가 말했다.

저건 잭의 2인자였던 다른 고양이야 이름이 뭐였더라… 까미?

까미라니 그리 위협적인 이름은 아니네. 한번 말을 걸어볼까?

그러자 다른 바퀴벌레 중 하나가 말했다.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니야 그 잭이 사라지고 2인자가 저 위치라는건 저 고양이가 더 악랄한 녀석일수도 있다는 거잖아. 좀만 더 지켜보고 행동하자.